생명칼럼

[생명의 문화] 동물과 인간의 생명

관리자 | 2010.08.18 11:08 | 조회 1721

[생명의 문화] 동물과 인간의 생명

평화신문 [1080호][2010.08.15]

 

동물에게도 생명권 있다

 

 

▲ 신승환 교수(가톨릭대 철학과,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고양이 폭행녀'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화제였다. 이른 새벽 귀가한 젊은 여성이 이웃집 고양이를 괴롭히다가 10층 높이에서 내던져 죽게 했다고 한다. 이 장면이 폐쇄회로 TV에 찍혀 동영상으로 올라온 것이다. 누리꾼의 비난은 물론, 동물사랑실천협회 고발이 이어졌다. 결국 검찰은 이 젊은 여성을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한다.

 

인터넷 달군 '고터양이 폭행녀'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동물에게도 인간과 같은 권리를 주장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성차별은 물론 인종주의가 추악한 범죄적 행위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동물차별이 죄가 된다는 사실에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싱어는 이런 생각을 인간이 지닌 종족중심주의 탓이라고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최근 저서 「죽음의 밥상」에서 동물학대 실상을 상세히 다루면서 채식주의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는 일평생 우유만 생산하다가 죽어가는 젖소, 공장식 사육으로 살만 찌우게 되는 돼지, 채식동물인 소가 고기를 갈아 만든 사료를 먹으면서 생기는 광우병 같은 위험, 24시간 달걀을 낳다가 죽어가는 닭 등 인간이 고기를 얻기 위해 벌이는 동물학대의 잔인함을 고발하고 있다. 그래서 동물에게도 정당한 생명의 권리가 있기에 이런 잔인하고 반생명적 행태를 막기 위해 전면적 동물해방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원 제목이 「Ethics of What We Eat」인 것만 보면 음식윤리에 대한 주장인 듯 하지만 지금까지의 싱어가 벌인 실천윤리학의 노력에 미뤄보면 그 뒤에는 육식으로 인해 벌어지는 동물학대와 생명파괴에 대한 비판과 윤리적 주장임을 곧장 알 수 있는 책이다.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체의 존재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할 때 우리는 많은 경우 거의 인간의 생명에 대해서만 거론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동물과 인간의 생명을 극명하게 구별해서 바라본 것이 결코 교회의 전통은 아니다. 오히려 문화적 전통을 자세히 살펴보면 현대와 같이 동물을 학대하고, 오로지 인간의 식탁을 위한 도구로 바라보는 문화는 최근의 것임을 알 수 있다.

 굳이 말하자면 이런 현상은 근대에 이르러 벌어진 독특한 일이다. 이런 현상은 17세기 이래 인간중심주의가 공고하게 굳어지고 자연을 정복대상이나 인간이 필요에 따른 도구로 간주하는 관점이 일반화되면서 이뤄진 셈이다. 중세 교회는 인간을 모든 생명체의 으뜸이면서 창조주에게서 생명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은 존재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인간은 피조물이며,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자연의 일부란 생각에는 의심이 없었다.

 

인간은 피조물, 자연의 일부

 

 창조하는 존재(ens creans)와 창조된 존재(ens creatum)의 구별은 존재론적으로 넘어설 수 없는 차이를 지닌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그가 누구이든 창조된 존재일 뿐이다. 다만 인간은 하느님의 위임을 받아 창조사업에 협조하고, 창조사업을 이끌어갈 권한을 받은 존재일 뿐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기도에서 보듯이 "형님이신 태양과 누님이신 달, 형제인 늑대"와 함께 창조의 신비와 의미를 충족시켜 가는 것이 인간 존재였던 것이다.

 

지나친 육식과 인간만을 생명체로 생각하는 극단적 인간중심주의는 근대의 결과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자연과 생명은 다만 인간의 도구일 뿐이라는 근대철학의 사고가 과잉으로 작동하게 되면서 이뤄진 현상이다. 음식과 생명체를 둘러싼 많은 문제들은 이러한 극단적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어디서도 인간만이 모든 생명체의 중심이며 인간을 위해 다른 생명체를 마음대로 다뤄도 좋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았다. 인간의 존재 이유는 오히려 생명을 존중함으로써 창조의 신비와 창조의 의미를 달성하는 데 있다.

 

생명, 자연의 주인은 하느님

 

 생명은 역사적 존재로 이해된다. 창조 이후 이뤄진 기나긴 생명의 역사는 인간에게 이러한 창조 사업을 완성하는 데 협력하고, 인간의 노력을 통해 하느님의 창조 의지를 완성해 가라는 계시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인간에게는 다른 생명을 마음대로 다루거나 인간 편의를 위한 도구로 만들 권리가 없다.

 

 인간은 생명과 자연의 주인이 아니다. 그는 다만 생명과 자연의 목자일 뿐이다. 기나긴 생명의 역사에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 생명체이며 생명의 결과물인 인간이 이제 생명의 신비와 의미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생명의 역사와 창조의 의미를 완성해야 할 존재로 자리 잡게 됐다는 사실이다. 그는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존재이다.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그는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반생명의 죽은 존재일 뿐이다.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