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 생명을 위한 교육

관리자 | 2011.10.06 11:35 | 조회 1221

[생명의 문화] 생명을 위한 교육

 

 

신승환 교수(가톨릭대 철학과,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국가 가운데 수년째 부동의 1위다. 더 기막힌 것은 젊은이 자살률 역시 세계 최고란 사실이다. 그 수치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009년에는 전년도 대비 18.8%가 증가했다고 한다. 최근 카이스트 대학생 4명의 자살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됐지만 대학생 자살은 연간 230건에 달한다.

 지난 1986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란 유언을 남기고 자살한 여중생의 경우도 큰 파문을 일으켰지만 그 이후로도 교육 환경이 좋아졌다는 보고는 찾기 힘들다. 아니 오히려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이제는 한 학교에서 연쇄적으로 자살이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사회와 교육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음을 이보다 더 잘 말해주는 일이 있을까. 사람이 죽어가는 데 우리는 무얼하고 있는가.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자살론」이란 책에서 모든 자살은 사회적 원인에 의한 것이며, 그러기에 사회적 타살로 이해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카이스트 사건의 경우는 사안이 분명하다. 모든 것을 경쟁으로 몰아가는 대학 교육과 패자가 살아날 길을 찾기 힘들게 만들어 놓은 정책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그런데도 그에 대해 반성하고, 그 문제를 고쳐나갈 대안을 위해 대학이나 교육 정책 입안자들, 혹은 우리 사회가 노력하고 있다는 말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을 져야할 그 대학의 총장이란 사람이 "미국 명문대는 자살률이 더 높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고 하니 가히 사회적 타살이란 말이 과장은 아닌 듯하다.

 대학이 세계적 명문대학이 돼야 하며 이를 위해 모든 것을 경쟁체제로 만들어야 한다는 교육철학은 어디서 생긴 것인가. 그런 생각은 타당한 것일까. 그렇게 해서 과연 명문대학이 될 수 있으며, 그럴 때 교육은 올바르게 이뤄지는 것일까. 그런 교육을 통해 길러낸 사람은 무엇을 지향하는지, 그 사회와 문화는 어디로 가게될 것인지에 대한 반성과 철학적 성찰을 하기나 하는 것일까?

 잘못된 교육정책과 교육에 대한 생각이 젊은이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있다. 명문대학이란 허상이 청춘의 희망과 열정을 회색빛 절망과 좌절로 왜곡시키고 있다. 경쟁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죽음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경쟁은 서로가 성숙하고 서로가 더 높아지도록 만드는데 목적이 있다. 올바른 경쟁은 서로를 돕지만 잘못된 경쟁은 낙오자를 찾는다. 모든 경쟁에는 뒤처지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기에, 그런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경쟁은 잘못된 경쟁이다. 그것은 반인간적이며 반생명적이다.

 오늘날 대학을 평가하는 지수는 두 가지다. 중앙일간지 대학평가표와 입시전문학원 입시 기준 배치표가 그것이다. 배치표는 명문대 진학을 위한 것이며, 대학평가표 역시 명문대를 가리기 위한 것이니 문제는 역시 이른바 명문대란 것이다. 그런데 명문대란 무엇인가? 국제화 지표, 영어강의와 국제적 교류, 외국인 유학생 등의 지표들이다. 그런 기준이 참된 교육과 학문을 성숙시키는 기준이 되는가?

 교육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며, 그를 통해 삶을 풍성하고 의미있게 만들어가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진리를 깨달아 사랑을 알며,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성숙함을 키우는 것이 교육이 아닌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사람답게 살게하는 것, 의미를 찾고 진리를 깨달게 하는 것, 그것이 참된 교육이다.

 그런데 오직 수치에만 매달리는 것이 오늘날 교육이다. 수치로 환원된 인간과 수치로 환원된 진리와 숫자로 표시되는 사랑만이 존재할 뿐, 삶과 의미는 어디에도 없다. 정신과 영혼은 숫자 안에 매몰되어 있을 뿐이다. 사람은 어디 있는가.

 교육 정책을 만들고, 교육을 담당하는 이들은 그 평가치에만 관심을 쏟는다. 그 평가치를 통해 자신의 숨은 욕망을 채우고자 한다. 그들 눈에 참 교육이나 학문의 의미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을 보지 않는 교육, 의미를 지향하지 않는 교육, 숫자와 욕망만이 번득이는 곳에 생명의 아름다움이란 애초에 자리할 수가 없다. 아름다움과 설렘이, 사랑과 진리가, 삶의 열정과 매혹이 사라진 곳에 회색빛 절망과 잿빛 죽음의 그림자가, 멋진 숫자만이 흘러넘친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적 명문대가 되고, 경제 성장을 이룩했으며, 명예는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은 죽어가는 것일까.

 숨겨진 욕망, 꼭꼭 감추어둔 욕심과 욕망을 벗어버리지 않은 채 외치는 모든 선과 성공은 파멸을 부른다. 그것이 교육이든 문화이든 공동체를 위한 헌신이든 그 어떤 명분으로 감싸더라도, 그 안에 사랑과 사람이, 생명과 삶이 사라지면 그것은 '회칠한 무덤'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과 사람을 보지 못하는 율법학자들에게 던지는 예수님의 경고는 지금 교육을 말하는 우리들, 세계적 명문대를 지향한다는 그들이 듣고 깨달아야 할 말씀이다.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문화와 교육은 헛된 욕망에 빠진 우리들 책임이다. 그들의 죽음은 성찰하지 않는 나와 당신에게 외치고 있다. "사람을 보라!"고.

 

[평화신문]    1115호   201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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