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제12회 생명의 날 담화문

관리자 | 2008.12.15 23:09 | 조회 1110

제12회 생명의 날 담화문


지난 한 해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생명윤리와 씨름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간 배아의 지위에 대한 논쟁에서부터 생명과학 연구자들의 연구 윤리에 이르기까지 최근 몇 년 동안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생명과학의 명암을 보다 분명하게 인식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는 생명과학의 올바른 발전이 어떤 모습으로 새롭게 탈바꿈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하였습니다. 특히 의미심장한 것은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에 대한 윤리적 반성이 다시 눈을 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집단에서,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근본적 쟁점들을 포함한 윤리적 문제들에 대해 더 많은 반성과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생명의 복음」 27항)사실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현대 사회에 ‘죽음의 문화’를 출현시킨 강력한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경향들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하느님 의식과 인간 의식을 몰아내었고, 그러한 문화적 풍토는 결국 이 사회에 진정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의식이 남아 있는가에 대한 의문까지도 제기하고 있습니다(「생명의 복음」 12항. 21항 참조). 한동안 시끄러웠던 국익 논쟁에 생명윤리는 거추장스런 것으로 추락하여 버렸고 인간의 고귀한 생명은 상품으로 전락하여 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난치병 연구와 치료라는 미명으로 난자를 제공한 여성들을 영웅으로 부추겨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기도 했던 우리 사회의 현실을 돌아다 볼 때, 인간은 더 이상 생명을 자신의 책임에 맡겨진 하느님의 선물로, 또 ‘사랑으로 보살피고 존중해야 할 신성한’ 존재가 아닌, 단순한 ‘사물’로 간주하는 경향에 빠진 것 같습니다(「생명의 선물」 11항. 22항 참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자행되는 생명에 대한 위협과 공격은 주로 물신주의와 국가주의 사고방식에 기인합니다. 미래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생명을 파괴하는 인간 배아 연구를 국가가 앞장서서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인간 생명과 관련된 특허를 다른 나라들 보다 선점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부의 풍토가 오히려 우리나라를 세계의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은 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마르크시즘과는 또 다른 형태의 유물론, 곧 실천적 유물론이 이미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회가 지향하는 유일한 목표는 물질적 안락뿐이며, 결국 우리 사회를 이른바 경제적 효율성, 무절제한 소비주의, 육체적 쾌락만을 중요한 가치로 추구하도록 부추깁니다. 그 결과는 인간 실존의 심오한 차원들을 무시하는 환경을 조성합니다(「생명의 복음」. 23항).

그러므로 우리 사회는 매우 시급하게 하느님 의식과 참된 인간 의식을 되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생명에 대한 다양하고 치명적인 결과를 수반하는 ‘죄의 구조들’(「생명의 복음」 24항)을 벗어날 수 있도록 인간 생명의 가치에 대한 완전한 진리를 추구하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요구됩니다. 이 진리는 무엇보다도 꿋꿋하게 생명의 의미와 가치를 존중하고 수호하는 일, 곧 생명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살아있는 것을 사랑하시는”(지혜 11,26)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 이러한 생명 사랑을 실천할 때, 결국 생명이 심각하게 도전받고 위협받는 현대 사회의 ‘죽음의 문화’를 ‘인간 생명의 새로운 문화’로 새롭게 변모시킬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생명의 복음을 주셨고, 이로써 우리가 변화되고 구원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의 백성이 되었으며, 따라서 그에 걸맞게 행동하고 봉사하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의무가 아니겠습니까?(「생명의 복음」 79항)

생명 사랑을 위한 새로운 문화는 무엇보다도 도덕률에 충실할 것을 요구합니다(「의료인헌장」 6항). 물론 생명에 대한 도덕률의 으뜸은 모든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선사하신 ‘선물로서의 생명’(「생명의 복음」 40항; 「생명의 선물」 I-1.4.5항)에 대해 언제나 감사하고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선물로서의 생명은 동시에 책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생명을 존중해야 하는 과업이 주어져 있으며, 이 과업을 위한 노력을 회피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인공유산반대선언문, 5항).

생명 존중의 노력은 일차적으로 생명의 하느님,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명은, 그 생명의 원리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이 원리 때문에 인간 생명이 어떤 단계나 어떤 상황에 있든지 각 개인의 양심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 안에서 그 인간 생명이 지닌 의미와 가치는 더욱더 존중받아야 합니다. 15년 전 ‘생명의 날’을 제정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의도(「생명의 복음」 85항)가 ‘죽음의 문화’ 속으로 점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에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06년 5월
제 12회 생명의 날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위원장 안 명 옥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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