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제7회 생명의 날 담화문 “죽이는 것도 나요, 살리는 것도 나다”

관리자 | 2008.12.15 23:08 | 조회 1368

제7회 생명의 날 담화문

“죽이는 것도 나요, 살리는 것도 나다”
(신명 32,39)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하느님 생명의 숨결이므로 하느님께서 이 생명의 유일한 주인이심을 믿는 것이 우리 모든 신자의 신앙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생사를 쥐고 계시어, 지하에 떨어뜨리기도 하시며 끌어올리기도 하시는”(1사무 2,6) 분이시기 때문에 “죽이는 것도 나요, 살리는 것도 나다”(신명 32,39)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십니다. 그런데 최근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인간 생명에 관한 몇몇 논의들은 인간 생명의 주님이신 하느님께 대한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기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낙태
우리 나라의 낙태 현실은 그야말로 비참합니다. 실정법이 낙태를 금지하고 있음에도 낙태 때문에 처벌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으며, 이러한 현상은 이 사회에 만연된 죽음의 문화를 대표하는 모습의 하나입니다. 사회적, 경제적 논리가 인간의 생명보다 앞설 수 있다고 하는 사고방식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또한 사회 현실이 이미 낙태를 부분적으로나마 수용하기 때문에 실정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명권은 인간이 가진 모든 권리 중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권리이며, 생명권을 무시하면서 다른 권리를 논의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는 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생명이 극히 위태한 경우의 간접 낙태 이외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낙태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재확인합니다. 교회는 언제나 약하고 방어능력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왔으며, 이는 자신에 대하여 최소한의 방어 능력도 가지지 못한 태아에 대한 관심과 사랑과 관련하여서도 결코 예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공 출산
가톨릭 교회는 동물의 인공 수정 기술이 인간의 생식에 적용됨으로써 마치 그것이 생명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체외수정 방식의 인공 출산 기술들이 실제로는 생명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의사의 손이 부부를 대신하여 수정란을 만들고, 그 수정란을 자궁에 착상시키는 일 등의 인공 출산 과정들은 인격의 고유성에서 비롯되는 인간 생식의 존엄성과 고유성을 전혀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될 인간 배아의 손실은 곧바로 인간 생명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체외수정의 환경과 결과를 보더라도 인공 출산은 결코 윤리적으로 용인될 수 없습니다. 우리 나라와 같은 문화 환경에서 불임 부부들이 겪는 고통이 충분히 인공 출산의 동기를 부여한다고도 하지만, 자녀를 갖고자 하는 열망이 아이를 가질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권리의 주체로서 자신의 인격성이 온전히 존중된 상태에서만 수정될 권리를 지니기 때문입니다(「의료인 헌장」 25항 참조).

대리모 출산
인공 출산의 한 방법인 대리모 출산도 체외수정에 대한 윤리적 판단과 동일하게 혼인의 일치성, 인간 출산의 존엄성, 여성의 존엄성에 위배되므로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어느 여성의 자궁에 그와는 유전적으로 다른 배아를 이식시키거나, 아기가 태어나면 고객에게 인도한다는 조건으로 임신하는 행위는 임신과 모성을 분리시키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친부모가 임신하고 출산하고 또 교육하여야 할 아이의 존엄성과 권리를 부인하는 일이며, 나아가 출산을 인큐베이터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행위와 다를 바 없습니다(「의료인 헌장」 29항 참조). 이렇듯 대리모 출산에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결국 이는 가정과 사회 질서의 혼란, 가족 관계의 분열이라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안락사
얼마 전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후 우리 나라에서도 안락사에 관한 논의가 매우 활발해졌습니다. 인간의 생명권은 언제나 존중되어야 하고, 비록 불치병의 말기 환자라고 하더라도 당연히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극심한 고통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삶이 의미가 없고 따라서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인간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서로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어느 누구도 무고한 인간 존재, 갓 잉태된 태아든 좀 자란 태아든, 어린이든 어른이든 노인이든,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든 죽어가는 사람이든 결코 인간의 살해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확고하게 천명합니다. 나아가 자기 자신을 위하여서든 아니면 자기가 돌보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서든, 어느 누구도 이러한 살인 행위를 요청할 수 없고, 동의하여서도 안 될 뿐만 아니라 어떠한 권위로라도 그러한 행위를 합법적으로 권고하거나 용인할 수 없음을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모욕이며 생명을 거스르는 범죄요 인간성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입니다(「안락사에 관한 선언」 참조).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인간의 생명은 임신된 순간부터 죽음에 다다르는 순간까지 어떠한 경우에도 존중되어야 합니다. 스스로를 표현하거나 보호할 능력이 없는 태아든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는 불치병 환자든 예외 없이 생명은 소중하고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생명을 질적으로 구분하려고 하는 어떠한 시도도 단호히 배척합니다. 약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생명을 더 소중하게 여기시는 스승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곧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마태 18,5).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우리 모두 생명을 사랑하여 생명의 주님께서 마련하시는 생명의 잔치에 참여합시다.


2001년 5월 27일 생명의 날에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

위원장 이 기 헌 주교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