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제6회 생명의 날 담화문 "진리의 하느님은 생명의 하느님"

관리자 | 2008.12.15 23:08 | 조회 1276

제6회 생명의 날 담화문

진리의 하느님께서는 생명의 하느님이십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국 가톨릭 교회는 제6회 ‘생명의 날’을 맞아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모든 이가 진리이시며 생명이신 주님(요한 14,6)을 따라 진리를 밝히는 빛의 자녀가 되고, 생명을 위해 헌신하는 생명의 수호자로서 거룩한 길을 걸어가도록 초대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성하께서는 이미 현대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반생명적 현상들의 뿌리에 자리잡고 있는 현상으로 자유의 그릇된 사용을 지적하셨습니다. 실제로 일부 현대 사조는 자유를 절대적인 것으로까지 격상시켜 모든 가치의 원천이 되게 함으로써(「진리의 광채」, 32항) 자유를 윤리적 판단의 최고 법정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는 결국 하느님께 대한 감각의 상실까지 초래하였고, 현대 사회는 그 직접적인 결과로 진리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특히 윤리적 판단을 할 때 선악의 기준을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이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특권을 각 개인에게 맡기려는 경향 때문에 진리는 상대적인 것으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오늘날 생명과 관련된 과학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생명 공학이라고도 불리는 이 분야에서는 이미 단성의 생식 세포만을 합쳐서 포유동물의 생명을 만들었고, 인간의 유전자 구조를 이용하여 유전자를 진단하는 방법으로 질병을 알아내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더욱이 얼마 전에는 생명체의 노화를 되돌리는 유전자 기술이 개발됨으로써 앞으로는 인간의 수명이 150살로도 늘어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이 분야의 연구는 인간 삶의 질적 향상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조작과 실험에 관한 끊임없는 연구와 발전이 불치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약을 만들어 내고, 인간의 육체적 건강을 도와주고, 수명까지 연장시켜 주는 그야말로 생명 공학의 눈부신 발전이 인간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리라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들떠있기도 한 현실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현대인의 자유는 너무 쉽게 경험적인 것과 효율적인 것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생명 공학의 이러한 눈부신 발전은 맹목적인 과학 기술주의적 시각을 갖게 하고, 따라서 이에 따르는 윤리 문제들에서도 타인의 자유까지 침범하는 자유까지도 과학 기술의 이름으로 인정하고 마는 우를 범하고 맙니다.
이러한 사고는 결국 과학적 인식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아가 인간이 가진 초월적이고 종교적인 가치를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인간을 위한 봉사로서 과학 지식이 진리가 되기보다는 인간을 물질화하여 오직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과학 지식이 진리가 되어 버리는 셈입니다.
인간 생명에 대한 진리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그것은 결코 인간의 손이 임의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세상을 만드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에게서 주어진다는 진리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하느님께 부여받은 생명을 온전히 보존하면서 지켜 나갈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생명은 결코 임의적으로 조작하거나 파괴하거나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만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 생명의 복제와 관련되는 모든 시도는 인간의 근본적인 특성과 본성을 송두리째 조작하고 부정하는 행위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된 인간(창세 1,26-27 참조)이 인간 손의 조작으로 그 존엄성이 훼손되어서는 안 됩니다. 복제와 조작으로 유일무이하고도 반복될 수 없는 존재로서의 인간 특성이 무너진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온갖 노력을 기울여 확립해 온 평등, 자유, 인권이라는 인류 역사의 보화를 한꺼번에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인간 자유를 왜곡하는 윤리적 상대주의는 이렇게 인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조작의 문제뿐만 아니라 안락사, 낙태까지도 합리화하려고 하는 죽음의 문화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더욱 심각한 것은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고 공동선을 증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공권력이 이러한 윤리적 위기에 대해 전혀 무방비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살려야 할 공권력으로서의 법이 인간 생명을 거스른다면 그 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할 것이고, 인간의 생명이 근본적으로 조작되고 위협당함으로써 인간의 기본권 침해가 예상된다면 그 법은 하루빨리 그 예방적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제자리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과학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윤리적으로도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실정법이 허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윤리적으로도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존재론적, 윤리적 특성을 뒤로하고 오로지 과학 기술을 맹신할 때에는 인간에 봉사하는 과학 기술이 아니라 그 반대 결과를 낳게 되어 인간은 결국 비인간화되고 말 것입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인간 생명에 대한 진리가 위기를 겪는 이 시대에 다시 진리이신 하느님께 돌아오도록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진리의 하느님께서는 생명의 하느님이시며, 생명의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참된 자유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자유는 인간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모상을 나타내는 가장 분명한 표징이기 때문입니다(사목헌장 17항 참조). 생명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


2000년 5월 28일 생명의 날에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

위원장 이 기 헌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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