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제4회 ‘생명의 날’ 담화 "생명은 언제난 선한 것입니다."

관리자 | 2008.12.15 23:08 | 조회 1329

제4회 ‘생명의 날’ 담화

생명은 언제나 선한 것입니다.
(『생명의 복음』, 34항)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
한국 가톨릭 교회가 매년 5월 마지막 주일에 지내는 ‘생명의 날’은 인간의 생명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이 시기에 여러분 모두를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지혜 11,26)께로 초대합니다. 현대 사회에 만연된 자유의 남용과 인간에 대한 봉사를 망각하는 과학기술주의적 사고와 물질만능주의가 인간의 참된 모습을 왜곡하면서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1디모 6,13)으로부터 인간을 멀리 떨어뜨리고 급기야는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음을 간파할 때 이 초대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너무나 절실합니다.

1. 안락사 - 거짓된 자유
오늘날 지구상의 일부국가에서는 이미 안락사를 합법화했고 또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극심한 고통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삶이 의미가 없다고 여기게 되면서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인간에게 있다는 주장이 법의 힘을 빌려 서서히 그 세력을 확장해 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오래 지속되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 곧 안락사가 마치 인간의 품위를 유지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은 실제로는 거짓된 자유이며 참된 인간성을 기만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안락사를 인정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에 타인 위에 군림하는, 타인에 대항하는 절대적인 힘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고, 이는 참된 자유의 죽음일 수 밖에 없습니다(『생명의 복음』, 20항 참조).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반복해서 선언합니다. “그 어떠한 것도, 어느 누구도 결코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허용할 수 없습니다. … 그리고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이나, 자기의 보호에 맡겨진 다른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으며, 그들은 명백하게든 암시적으로든 이러한 행위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신앙교리성, 『안락사에 관한 선언』).

2. 자살자의 증가
오늘날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반생명 현상은 자살자의 증가입니다. 경제적 이유에 의한 절망이나 고립을 비롯해서 인생에 대한 회의와 공포 등이 삶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생명을 끊는 비참한 인간의 현실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자살이 심리적, 문화적, 사회적 여건이 그 원인이 될 수 있다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볼 때 자살은 중대한 비윤리적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자살은 생명과 죽음의 주관자이신 하느님의 주권에 대한 거부이며, 인간의 본성으로서의 자기애에 대한 거부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생명의 복음』, 66항 참조). 오로지 하느님만이 인간 생명의 주인이시며, 인간은 그 생명의 관리자일 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면하는 고통과 죽음이라는 시련의 시기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배우는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더욱 필요합니다. 그 관심과 사랑은 절망을 희망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3. 유전자 개입 및 조작
오늘날 의료 기술의 발달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생명의 복제까지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이미 무성생식 복제 기술을 통해 복제양 돌리가 만들어졌다고 하고, 인간의 유전자를 가진 동물들, 머리 없는 올챙이까지도 생산 가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기술의 발달은 의료 분야에 신기원을 이룩했다는 평가를 이끌어내기도 하였지만 인간 유전자를 실험적으로 변형시키는 조작의 차원에서는 새롭고도 미묘한 윤리적 문제들을 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인간 유전자 조작에 대한 윤리성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과 온전성 그리고 주체성의 존중입니다. 질병의 치료 목적으로 인간 유전자에 대해 개입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인정되지만 만일 인간 유전자에 대한 개입이 인류 사회에 어떤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윤리성의 기준을 무시하는 것이어서는 안될 것입니다(『의료인 헌장』, 13항 참조). 모든 의료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생명에 봉사해야 하며,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인 생명권에 봉사해야만 합니다.

4. 윤리적 질서와 공권력
성서는 확고하게 인간 생명의 절대적 불가침성을 가르치고 있으며, 교회의 교도권도 이 가르침에 대해서는 항구하게 도덕적 진리로 제시합니다. 주변의 상황이나 시대의 변화도 결코 이 진리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인간 생명의 절대적 불가침성의 보호는 국가의 법과도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락사나 자살, 나아가 인간 유전자 조작 등 인간 생명을 직접적이고도 중대하게 침해하는 행위들을 법에서 인정하고 보호한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권리의 원천인 생명권을 무시하는 중대한 불의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권력은 윤리적 질서에서 요청되는 것이며,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지상의 평화』, 51항 참조).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초대에 기꺼이 응답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아무한테도 허황된 이론에 속아넘어 가지 마십시오. … 여러분은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빛은 모든 선과 정의와 진실을 열매 맺습니다”(에페 5,6-9).

1998년 5월 31일 생명의 날에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


위원장 서정덕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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