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아하! 생명윤리] 27- 식물인간(?)

관리자 | 2008.12.15 23:15 | 조회 1177

[아하! 생명윤리] 27- 식물인간(?)
899호 발행일 : 2006-12-10

이동익 신부(가톨릭대 의과대학 교수)

 지난해 이탈리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교통사고로 2년간 식물상태에 있다가 깨어난 30대 남성이 자신이 혼수상태로 누워있던 기간 동안 주변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알아듣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고 의료진으로부터 '거의 사망'이라는 판정을 받았지만 식물인간 상태로 2년을 누워 있다가 깨어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의사들은 내가 의식이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모든 것을 알아듣고 절망감에 울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인가.

 또 미국에서는 스캔틀린이라는 여성이 20년간 혼수상태로 지내다가 놀랍게도 갑자기 의식이 돌아왔다고 한다. 뺑소니차에 치여 쓰러져 의식을 잃었고, 가족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가 거의 기적적으로 다시 의식을 찾았고, 이제는 말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겨우 소화와 호흡만이 가능할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혼수상태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접한다. 환자 가족들은 병상에서 환자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볼 뿐 아무런 처치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 어떤 가족들은 몇년 혹은 몇십년 넘게 지속되는 환자 혼수상태가 이미 회복불가능하다고 생각해 그나마 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기본적 치료까지도 중단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사회 일각에서는 환자 자신의 고통은 물론, 그 가족들의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그런 환자들에 대한 안락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환자 가족들의 고통도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그 고통 때문에 생명을 죽여도 될까? 죽을 환자인데 오히려 안락사가 그 환자와 가족들에게 더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끔직하다. 인간을 쓸모없는 인간과 아직도 쓸 수 있는 인간으로 구분하는 사고방식에선 그런 생각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우리 사회가 그렇게까지 타락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식물상태 환자와 뇌사자는 명백히 다르다. 그 차이점은 뇌사자는 회복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이고 식물상태 환자는 위의 사례들에서 보는 것처럼 회복 가능성이 있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기에 회복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죽게 내버려 둔다는 것이 타당치 않다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의 과학학술지 「사이언스」는 교통사고로 식물상태가 된 한 영국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 여성에게 테니스 치는 장면과 집안의 여러 방을 돌아다는 것을 상상하라고 주문을 하고 뇌 반응을 관찰했더니 놀랍게도 정상인 뇌 부위와 거의 같은 부위에서 활동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식물상태 환자도 의식이 있다는 명백한 과학적 증거다.

 식물상태 환자 때문에 그 가족들이 고통을 겪는다면 이를 환자의 죽음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함께 그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평화신문 기자 pbc@pbc.co.kr

(사진설명)
뇌와 인간의식 식물상태의 환자도 의식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였다. 복잡한 뇌의 구조 안에 또렷한 인간의식이 활동하고 있다. 그림=장우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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