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아하! 생명윤리] 25- 죽음

관리자 | 2008.12.15 23:15 | 조회 1133

[아하! 생명윤리] 25- 죽음
평화신문 897호 발행일 : 2006-11-26

이동익 신부(가톨릭대 의과대학 교수)

 '죽음'은 생명윤리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하느님 선물인 인간 생명은 하느님만이 삶의 최종 순간을 결정하신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 생명의 충실한 관리자인 인간은 하느님에게서 선물로 받은 생명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면서 살아가며,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는 하느님께 다시 생명을 맡기면서 이 세상을 떠나간다.

 우리 스스로는 생명을 주관하는 이로 보지 않으며 자신의 죽음을 판정하는 위치에 있지도 않다. 다만 죽음에 가까울 때, 그리고 죽는 그 순간에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감사, 그리고 축복과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기쁘게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생명의 반대 개념으로 죽음이란 그 자체로는 단절이며 절망 그리고 상실의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하느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죽음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죽음은 영원을 향해서 활짝 열려있는 문이며, 그리스도 죽음과 부활 신비에 참여하는 결정적 체험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렇게 죽음을 넘어서는 인간의 영속성을 강조하며, 따라서 우리의 신앙 안에서 죽음을 넘어서는 강한 희망을 갖게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명 연장의 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고, 현대인들은 특별히 생명과학과 의학의 발달이 그 꿈을 실현시킬 것이라는 또 하나의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 같다. 마치 죽음을 피할 수 있을 것처럼 우리를 유혹하는 '생명 연장의 꿈'이라는 광고 문구를 독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죽음이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 실존이라는 점이다. 다만 실존적으로 다가오는 죽음에 어떻게 순응할 것인가에 따라서 삶은 다른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비록 현대 의학이 인공적으로 죽음의 시간을 어느 정도 늦출 수 있다고 하지만 결국 나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자연스런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능동적으로 맞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만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갖춘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교황청 과학원은 죽음을 판정하는 생의학적 기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몸의 신체적, 정신적 기능을 통합하고 조화시키는 능력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상실하였다면 사망한 것이다."

 죽음에 대한 판정에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하겠지만 때로는 의료집착적 행위로 임종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면 이 또한 죽음에 대한 올바른 자세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임종자가 죽음을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죽음을 넘어서는 변화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영적 도움을 주는 일일 것이다.

 "죽이는 것도 나요, 살리는 것도 나다." (신명 32,39)
평화신문 기자 pb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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