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환경호르몬 때문에 생존을 위협받고 술·담배·스트레스에 지쳐가는 정자의 하소연

관리자 | 2008.12.15 23:18 | 조회 1461

환경호르몬 때문에 생존을 위협받고 술·담배·스트레스에 지쳐가는 정자의 하소연

환경호르몬 때문에 생존을 위협받고 술·담배·스트레스에 지쳐가는 정자의 하소연

▣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안녕하세요! 저는 ‘정자’입니다. 쑥스럽지만 여러분께 제 인생 상담, 사실은 연애 상담 좀 받으려고 이렇게 찾아왔답니다. 보다시피 제가 좀 잘생기고 한 몸매 하잖아요. 이런 제가 요즘 외로움에 부들부들 떨고 있답니다. 잘난 정자가 고독한 이유, 이거… 참 말하기 부끄러운 비밀인데, 실은 제가 허우대만 멀쩡하지 속은 좀 부실하거든요.

13년만에 남성 정자수 30% 감소

저도 ‘쭉쭉빵빵’하고 어여쁜 난자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습니다. 그런데 산 넘고 바다 건너 자궁 나라에 사는 난자양을 만나러 가는 길은 험난할뿐더러, 미녀를 둘러싼 무수한 경쟁 상대들과 싸워야 하는데 제겐 그럴 힘이 없네요. 그렇다고 난자양에 대한 불꽃같은 제 사랑을 포기할 순 없는 법! 그래서 여러분께 도움을 요청하려 한답니다.

그나저나 제가 왜 이렇게 비실거리냐고요? 말도 마세요. 저만 비실거리는 게 아니라 다른 형제들도 비실거리다 죽곤 한답니다.

원래 전 형제가 많아요. 일반적으로 정액 1㎖당 6천만에서 8천만 개의 정자가 있어요. 그런데 프랑스에 사는 주아네 박사가 1995년 연구논문을 통해 “1973년 정액 1㎖당 8900만 개였던 남성 정자 수가 1995년에는 6천만 개로 줄었으며, 고환 평균 무게도 1981년 18.9g에서 1991년 17.9g으로 감소했다”고 밝혔습니다. 2004년 스코틀랜드 에버딘 생식연구소에서 발표한 연구결과를 보면 남성 정자 수가 13년여 만에 30%가량 줄어들었다고 해요. 1989년에 1㎖당 8700만 마리였던 게 2002년에는 6200만 마리로 급감했고, 2천만 마리에 도달하지 못하는 남성이 15%를 넘었대요.

왜 정자들이 수난 시대를 겪게 된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환경호르몬’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요. 전 세상에서 환경호르몬이 제일 싫어요. 환경호르몬의 본명은 ‘외인성 내분비교란물질’입니다. 환경호르몬의 정체에 대해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환경호르몬은 환경 오염물질에서 나오는 가짜 호르몬인데 자기가 호르몬인 척하면서 인체에 들어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비슷한 작용을 합니다. 에스트로겐이 들어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자리를 빼앗아가는 거죠.

환경호르몬은 종류가 매우 다양하답니다. 세계야생생물 기금과 일본 환경청이 선정한 환경호르몬은 농약에 쓰였던 DDT, 변압기 절연유로 사용했던 PCB, 다이옥신, 음료수 코팅제 원료인 비스페놀A, TBT(페인트) 등을 포함해 67종이나 됩니다. 이름이 좀 어렵죠? 그런데 이름만 어렵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물질들이에요. 플라스틱 용기, 비닐, 랩, 쿠킹호일, 캔, 컵라면, 살충제 등에서 다양한 환경호르몬이 나온답니다. 이놈들이 저를 약하게 만들 뿐 아니라, 제 형제들을 죽인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지요.

예를 들어볼까요? 미국에서는 1980년에 DDT의 영향으로 플로리다주 아포프카 호수에 사는 수컷 악어의 생식기 크기가 정상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1998년엔 일본의 중화학공장 지대를 관통하는 다마강에 사는 수컷 잉어의 정소가 이상을 보였지요. 원래 잉어의 수컷 정소는 희고 통통한데 이 강에서 채집한 잉어는 10마리 중 3마리꼴로 크기가 볼펜 굵기밖에 안 되고 색깔도 다갈색이었대요.

2003년 비뇨기과 환자 1996년의 두 배

환경호르몬 중에서도 특히 다이옥신은 정자를 해치기로 악명이 높아요. 다이옥신 중에서도 특히 2, 3, 7, 8-TCDD라는 게 있는데, 위스콘신대학의 피터슨과 그의 동료 무어는 수컷 흰쥐에 고용량의 TCDD를 투여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흰쥐의 테스토스테론은 저하됐고 고환과 부속기관들이 위축됐지요. 그러나 두 연구자가 TCDD를 너무 많이 투여했다는 비판이 있었어요. 그래서 위스콘신대학의 마블리는 적은 양의 다이옥신도 생식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임신한 어미 흰쥐에게 임신 기간 15일 동안 다이옥신을 한 번만 먹이고 실험을 했어요. 그랬더니 다이옥신을 먹은 엄마 쥐에게서 태어난 수컷 흰쥐는 아무것도 먹이지 않은 어미의 새끼에 비해 정자 수가 56%나 감소했지 뭐예요.

이렇게 저를 허약하게 만들고, 내 정자 형제들을 죽였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환경호르몬이지만 그것이 저를 약하게 만들었다는 증거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요. 한순영 식품의약품안전청 독성연구소 내분비계장애물질팀장은 “사람의 정자 수 감소에 내분비장애물질이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 위해 연구를 계속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인과관계와 발생 메커니즘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다만 “동물이 사람에 견줘 환경호르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다량의 환경호르몬을 투여하면 생식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죠. 그런데 사람은 동물처럼 실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환경호르몬과 생식기의 인과관계를 정확히 밝히기가 어렵대요.

그렇지만 우리나라 비뇨기과 환자 수가 증가하는 추이를 보면 환경호르몬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요. 1996년에서 2003년까지 국내 87개 비뇨기과 병원의 입원 환자 추세를 보면 1996년엔 입원 환자 수가 4만2137명이었지만 2003년엔 9만1052명으로 배가 넘게 증가했어요. 같은 기간 동안 출생자 수가 20만 명이나 줄어들었죠. 한상원 연세대 의대 비뇨기과 교수는 “요도하열, 정계정맥류 등 비뇨기과 환자가 10년 사이에 배 이상 늘어났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추세는 우리 나라에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미국·노르웨이·덴마크 등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하게 관찰됩니다. 요도하열이란 소변의 출구인 외요도구가 보통 사람과 달리 아랫면 뒤쪽에 있는 선천성 요도기형이고, 정계정맥류는 고환에서 나가는 정맥에 장애나 역류가 일어나 정맥혈관이 엉키고 부풀어오르는 질환입니다.

물론 환경호르몬만 절 괴롭히는 건 아니에요. 술, 담배, 스트레스 등 세상에는 절 힘들게 하는 게 너무나 많답니다. 불임 전문병원인 마리아병원의 이원돈 원장은 “담배의 니코틴이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저하하고 정자의 형태를 변형시킨다”고 설명합니다. 송인옥 관동의대 제일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생기는 코르티솔이란 물질이 정자의 기능을 떨어뜨린다”며 스트레스도 저를 허약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설명합니다. 환경호르몬에 술, 담배, 거기다 스트레스까지. 정자는 정말 먹고 살기 힘들답니다.

아참, 한 가지 더. 저는 더운 걸 무지 싫어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왜 절 덥고 지치게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요즘 몸에 꼭 달라붙는 청바지인 스키니진이 유행이라고 하는데요. 몸에 꼭 끼는 바지를 입거나, 사무실에 오랜 시간 앉아 있으면 제가 사는 집인 고환이 뜨겁게 되고 말아요. 거의 사우나실 처럼 된다니까요. 난자한테 가기도 전에 더위로 지쳐버리니까 제가 연애를 못하잖아요. 저의 싱글 탈출을 위해 여러분이 도와주세요.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일단 환경호르몬을 피하는 게 중요합니다. 가장 좋은 길은 친환경적인 식사입니다. 되도록 농약을 치지 않은 유기농 농산물을 드시고, 그렇지 않으면 채소와 과일은 물로 세 번 이상 씻어주세요. 일회용 컵, 캔 음료도 나쁩니다. 플라스틱 용기에 음식을 담지 마세요. 전자레인지에 랩을 씌워서 음식을 데우시는 분들이 많은데, 환경호르몬을 맛있게(?) 드시고 싶으시면 그렇게 하시든지요.


부실 정자 몸짱 만들기 프로젝트!

절 괴롭히는 환경호르몬에서 멀어지는 데 성공했으면, 다음에 ‘부실 정자 몸짱 만들기 프로젝트’에 도전하세요. 음식을 골고루 많이 드시고 헬스, 수영, 등산 등 운동을 해주세요. 그래야 저의 운동실력이 좋아지거든요. 운동을 하셨으면 더위에 맥을 못 추는 저를 위해, 저의 집인 고환을 차가운 물로 청소해 주세요. 그렇게만 한다면, 부실했던 저도 ‘몸짱 정자’로 거듭날 수 있다고요. 저도 알고 보면 터프한 정자라니까요. 외로운 정자가 싱글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거죠? 사랑하는 난자씨, 조금만 기다리세요. 내 곧 당신을 만나러 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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