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시작-언제부터 생명이 시작되는가

관리자 | 2008.12.15 23:17 | 조회 3615

생명의 시작

언제부터 생명이 시작하는가?

태아는 인간인가?
<사진1> 정자와 난자가 만나 창조된 수정아

1940년대만 해도 태아의 상태를 의학적으로 규명하는 태생학 또는 발생학, 태아학(Fatology)이 없었다. 그래서 “태아는 인간인가”하는 문제는 개인신앙이나 감각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현대의학의 발전은 (특히 1970년대 이후) 과학적으로도 태아가 유일하고 독특한 별개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
23개의 염색체를 가진 정자와 23개의 염색체를 가진 난자의 만남으로 46개의 인간염색체를 가진 뚜렷한 인간으로서의 수정아(受精兒:受精卵이 아니라)가 창조된다. 이것은 토끼도 아니요, 홍당무도 아니다. 오직 인간일 뿐이다. 물론 46개의 염색체를 가진 다른 동물이 있지만 문제는 염색체의 수가 아니라 그 염색체 형질의 정체이다. 수정아는 인간의 모든 형질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향후 죽을 때가지 인간이 되기 위해 더할 것이나 뺄 것이 없다. 단지 크기만을 키워갈 뿐이다.
이 수정아는 수정된지 5~10일 후 나팔관을 타고 자궁으로 내려가 거기에 착상한다. 이 수정아는 모체와는 완전 별개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그는 모체로부터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받을 뿐이지 그의 성장이나 세포의 재생산은 완전히 독립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는 모체의 자궁과 연결시키는 태반의 시초를 자기 세포로부터 발생시키고, 착상 후 3일 내에 모체에 호르몬을 보내 “내가 당신과 연결되었다.”는 메시지를 보내어 월경을 중지시킨다. 그리고 어머니의 가슴을 부풀려 줄 것을 요구하고, 나중에 분만을 위해 골반을 연하게 만들 것도 부탁한다. - 호르몬 정보를 통해.
18일이 되면 어머니와는 다른 혈액형(또는 같은 혈액형)의 피를 심장이 뿜어내 피를 순환 시킨다

40일 되면 이미 뇌파가 측정된다. 뇌와 뇌간의 기능을 삶과 죽음의 기준으로 하는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이 태아를 무엇으로 규정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언제 임신 사실을 알게되고, 또 낙태를 고려한다면 언제 하게 되는가? 빨라야 이 때쯤이라고 한다면 이때 낙태시키는 물체(?)의 정체는 무엇인가?
6주가 되면 고통도 느끼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6주 반이 되면 젖니의 뿌리가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진2> 임신 8주의 태아


8주가 되면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모든 신체구조가 형성되고 뚜렷한 지문도 발견된다. 이 때는 외부의 자극에 대해 민감히 반응한다. 태아의 위는 굳은 음식을 아직 먹지도 않는데 위액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초음파 녹음을 통해 심장 고동소리도 들을 수 있다. 또 엄지손가락을 빠는 것을 자주 발견 할 수 있다.
11주에서 12주가 되면 태아 특유의 호흡을 시작한다 이 운동을 통해 호흡기관을 키워 가고 있는 것이다 또 11주에는 삼키기도 하고 손톱도 생긴다. 12주가 되면 모든 기관이 육안으로 볼 수 있게 존재하고 정상작동을 한다. 자고, 깨고, 맛보고, 듣고….
이와 같이 어머니가 자신을 자궁 밖으로 내보낼 때까지 크기만을 키워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주에서 12주 사이의 태아가 가장 많이 낙태 당한다는 사실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14주가 되면 청각을 사용하여 듣기 시작한다. 듣는다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이 아기가 낙태된다면 그 아기의 마지막 기억은 무엇일까?
이와 같은 성장의 리듬을 타고 모든 인간은 22세까지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임신 6개월 째의 아기가 인간이 아니라면 이 물체가 자라서 어떻게 인간으로 변혁을 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앞서 소개한 태아의 발생, 성장과정 중 그 어느 부분에서도 혁명적인 변화가 없었다. 또한 한 인간으로서 이 과정 중 어떤 과정이라도 건너뛴 사람도 없다. 인간이 무생물, 또는 비인간에서 어느 순간부터 인간으로 혁명적이고 돌발적인 변화에 의해 전이된다는 것을 의학적으로 필자에게 설명해 준다면 필자는 다시 낙태지지의 최일선에 설 용의가 있다.
“태아는 인간인가”라는 질문은 사실 낙태라는 의료기술이 개발되고 시행되기 때문에 생긴 질문이지 본래적으로 인간은 이 질문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어떤 남편이 아내로부터 임신소식을 듣는다면 “저 수정아가 생물학적으로 인간일까, 또 법적으로 인간 권리가 있는 개별 인격체인가 ”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오, 내 아기”라고 탄성부터 지를 것이다. 바로 여기에 가장 확실한 인간 스스로의 대답이 담겨 있는 것이다.



<사진 3>
임신 15주의 태아
임신 6개월의 태아
출산을 앞둔 태아

문제는 ‘나’의 편의를 위해 쉽사리 낙태하는 세태 속에서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도덕적으로 눈을 감아 버린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눈에 보이고 보이지 않음에 따라 얼마나 판이하게 다른 도덕성을 보이는지 다음의 예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아래 [사진1]은 임신 21주 때 조산한 아기의 사진이다. 아기가 얼마나 작은지 보여 주기 위해 간호사의 결혼반지를 팔뚝에 끼워 보았다. 만약 어떤 의사가 이 아기를 사망에 이르도록 의료조치를 취했다면 그 의사에게 형법상의 살인죄를 적용하여 구속 할 것이다. [사진2]는 같은 21주 된 아기로서 유도분만에 의해 낙태시킨 후의 사진이다. 그렇다면 이 낙태를 시술한 의사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에게만 하는 질문이 있다. “예수님은 언제부터 인간이었습니까?” 그리고 “마리아 같은 상황이라면 낙태를 고려할 만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마리아가 만약 낙태를 감행했다면?” 이제 태아가 의학적으로 분명히 수정의 순간부터 인간이라는 해답을 얻었다면, 당신은 낙태라는 행위를 어떤 단어로 규정 할 것인가?
“살인”.

<출처: 낙태반대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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