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아하! 생명윤리] 38- 뉘른베르크 강령

관리자 | 2008.12.15 23:17 | 조회 1428


[아하! 생명윤리] 38- 뉘른베르크 강령
910호 발행일 : 2007-03-04

이동익 신부(가톨릭대 의과대학 교수)

 독일 나치 정권에서도 '731부대'에 버금갈 정도의 인체실험이 무자비하게 자행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자행된 멩겔레의 쌍둥이 실험은 인체실험이라는 이름으로 무려 10만 명을 죽인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의사이자 과학자로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을 가진 멩겔레는 병에 걸린 수용인들 위생을 위해 가스실 처형을 감행했고, 죽일 사람들을 가려내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죽이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수감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는 인류학 연구라는 미명으로 비밀리에 쌍둥이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를 시도했고, 측정 가능한 모든 신체부위를 측정, 비교하려고 실험대상 쌍둥이들을 실험용 쥐를 죽이듯 죽이곤 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의학, 과학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천인공노할 만행이 아닐 수 없다. 대학살에서 의사들은 최종 결정의 집행자로서 중요한 몫을 했고 과학이 대학살의 중심에 있었던 역사의 비극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1945~1946년 뉘른베르크에서 나치 전범 재판이 열렸고, 의사 20명과 의료행정가 3명이 의학의 이름으로 자행된 살인, 고문, 잔학행위로 기소됐다. 그들 중 7명은 교수형, 9명은 장기형을 받았다. 이 재판 결과로 제정된 것이 뉘른베르크 강령이다. 이 강령에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와 실험에서 윤리 및 법적 개념을 충족시키기 위해 지켜야 할 10가지 기본 원리가 담겨있다.

 그 중 몇 가지 내용을 소개한다. 첫째,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에서 대상자의 자발적 동의는 절대적이다. 이는 법적 권한을 갖는 사람이 동의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로운 선택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 어떠한 강권이나 사기, 기만, 폭력, 혹시 나중에라도 있을지 모르는 구속이나 압박 요인들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1항). 둘째, 실험은 사회의 선을 위해 풍성한 결실들을 산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그 본성상 인위적이지 않고 무익하지 않아야 한다(2항). 셋째, 실험은 동물 실험 결과에 기초하여 계획해야 하며, 예상되는 결과가 실험 과정을 정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3항). 넷째, 실험은 학문적으로 자격을 갖춘 이들에 의해서만 수행해야 한다. 실험을 지휘하거나 관계되는 모든 사람에게는 모든 단계에서 최상의 기술과 주의가 요구된다(8항).

 뉘른베르크 강령은 국제 사회에서 사상 최초로 채택된 의학실험의 연구윤리 강령으로 그 의미가 크다. 이후 개별 국가 혹은 국제적 차원의 윤리강령과 법규, 규범들은 뉘른베르크 강령에 기초를 두고 있다. 따라서 이 강령은 오늘날까지도 상당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 1947년 세계의사회(WMA)의 '제네바 선언'은 이 강령의 정신을 특히 잘 반영한 대표적 문서로 꼽을 수 있다.
평화신문 기자 pb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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