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아하! 생명윤리] 31- 안락사

관리자 | 2008.12.15 23:16 | 조회 1140

[아하! 생명윤리] 31- 안락사
903호 발행일 : 2007-01-07

이동익 신부(가톨릭대 의과대학 교수)

 우리 사회에서 유용함이라든가 편리함은 이미 이상적 특징들로 자리 잡았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볼 수 있는 일종의 실천적 유물론 현상이다. 사랑, 희생, 봉사와도 같은 정신적 가치보다 돈으로 대표되는 물질적 가치가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관계라든가 사회적 가치 나아가 국가의 정책들도 이미 물질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매우 끔찍하다.

 이러한 사회 현상은 결국 인간의 생명까지도 물질의 관점에서 판단함으로써 생명경시현상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더 큰 수용과 사랑,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고통 받는 생명을 이제는 쓸모없는 생명이라고 간주하거나, 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짐으로 생각하여, 생명을 거부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지 않는가.

 예컨대 고통 중에 있는 말기 환자가 회복 가능성도 없고,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 환자를 고통에서 구한다는 명분으로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그 환자에게 오히려 자비로운 행위가 된다고 하여 몇몇 나라에서는 국가 법률로서 안락사를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인간 생명을 주사약이나 독극물을 통해 단축시키는 것이 자비로운 행위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고통이 극심한 난치ㆍ불치병 환자들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살아있는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는 것이 인간적 죽음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는가.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살아 움직이게 하신 생명의 주님이시며, 그분에게 선사받은 생명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생명의 관리자일 뿐이다. 하느님의 생명에 대해 인간에게 맡겨진 사명은 다만 생명을 잘 보호하고 증진시키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죄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예외 없이 그 사람에 대한 하느님 사랑을 거스르는 일이며, 하느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안락사는 이처럼 하느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며, 무죄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일이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면서 인간적 품위를 가지고 죽을 수 있도록 돕는다는 안락사의 취지가 매우 그럴듯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인간적 품위를 지닌 죽음이란 결코 그런 죽음은 아니다. 말기환자들이 겪는 엄청난 고통을 덜어주는 방법이 안락사라는 주장은 그 환자의 주위 사람들이 환자의 고통에 아예 귀와 마음을 막아버리고 가장 손쉬우면서도 가장 유물론적 방법으로 대처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간다운 품위를 지니고 죽을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은 환자 스스로가 비록 고통 중에서도 평화롭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고통 경감을 위한 노력, 죽음에 이르는 정신적 고뇌까지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주위의 따뜻한 동행과 배려는 안락사적 사고를 뛰어넘어 환자에게 참다운 인간적 품위를 지닌 죽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돕게 될 것이다.
평화신문 기자 pbc@pbc.co.kr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