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박정우 신부의 생명칼럼] 6.말기환자 산소호흡기 떼어도 좋은가?

관리자 | 2008.12.15 23:23 | 조회 1749

[박정우 신부의 생명칼럼] 6.말기환자 산소호흡기 떼어도 좋은가?
존엄한 죽음 맞도록 기도해야

얼마 전 소생 가능성이 없이 연명치료로 생명을 연장해 온 말기 간경변 환자에게서 산소호흡기를 제거한 의사 두 명과 딸에게 경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는 보도와 함께 소위 ‘품위있는 죽음’ 혹은 ‘안락사’와 관련된 논쟁이 다시 대두되었다. 주치의가 딸의 동의를 얻어 더 이상 가망이 없는 환자의 산소호흡기를 뗐지만 아들이 누나와 의사를 고발한 것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교리적으로 이번 사건을 어떻게 봐야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톨릭교회는 어떤 조건 하에서 더 이상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합당하며, 고의적으로 죽음을 이끌어내는 ‘안락사’와 다른 개념으로 본다.

1980년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 발표한 ‘안락사에 관한 선언’을 보면 안락사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지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알 수 있다. 우선 안락사(euthanasia)라는 말은 고대에는 심한 고통이 없는 ‘편안한 죽음’을 뜻했지만 오늘날 그 의미가 변해서 극도의 고통을 종식시키거나, 가족과 사회에 무거운 짐을 지울 수 있는 병에 걸린 이들을 죽이기 위한 ‘안락 살해’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가톨릭교회는 분명히 이런 ‘안락 살해’를 단죄한다. 어느 누구도 결코 인간의 살해를 용납할 수 없고, 누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살인행위를 요청하거나 동의할 수 없다. 비록 오래 지속되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으로 말미암아 선의로 환자에게 죽음을 선택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믿게 되는 일이 일어나도 살인행위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고 지적한다.

통상적으로 안락사는 환자가 이성적인 판단으로 동의할 경우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의사가 치사량의 극약을 투여하는 적극적 안락사(자비적 안락사)와 말기환자에게 적극적인 치료를 중지함으로써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소극적 안락사(존엄적 안락사)로 구분한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환자의 치료를 소명으로 삼고 있는 의사의 임무와 모순되고, 인간의 삶과 죽음이 인간의 자유로운 자기 결정에 맡겨져 있다고 보는 오류에 빠질 수 있으므로 배척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인정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지는 어떤 경우를 말하는가? 우선 교회가 인정하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는 ‘자신의 손에 의해서 혹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서 죽음을 획득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그리고 그리스도교적인 존엄성을 지니고 평화롭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더 이상 치료의 가능성이 없는 경우 환자는 ‘균형’을 넘어서는 과도한 의학적 수단이나 예외적 치료를 거부할 수 있다. 따라서 말기환자에게 통상적인 치료수단은 의무적이지만, 생명연장 장치 등 예외적 수단의 사용은 항상 의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치료는 고통스런 죽음의 시간만을 연장해 줄 뿐이기에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환자의 결정은 양심 안에서 허용된다는 것이다.

의사는 환자의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충분한 치료법이 없다면, 여러 가지 조건들을 종합하고 판단해서 새롭게 시도되는 진보된 의료 기술이 환자에게 꼭 필요한 지를 판단해서 그것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환자의 동의를 얻어 중단할 수 있다. 오히려 담당 의사가 자신이 맡은 환자들 중 완치될 수 없는 환자도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의료 집착’이라고 활 수 있는 지나친 연명치료를 고집한다면 그것이 윤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전제되는 것은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정상적이며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수단, 즉 영양공급, 수혈, 주사, 간호, 투약 등은 언제나 제공되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어떤 것이 의료집착이고 어떤 것이 정당한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포기인지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의사의 ‘지식과 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을 준비하는 순간은 피해야만 할 고통의 순간이 아니라 이승의 삶을 마감하고 영생의 길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의료진과 가족들은 말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되, 지나친 연명치료에 집착하기 보다는 그가 자신의 삶을 잘 정리하고 신앙 안에서 평화롭고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격려하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박정우 신부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가톨릭 신문, 기사입력일 : 2007-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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