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박정우 신부의 생명칼럼] 3.생명윤리법 공청회에 다녀와서

관리자 | 2008.12.15 23:22 | 조회 1201

 


 

[박정우 신부의 생명칼럼] 3.생명윤리법 공청회에 다녀와서


과학·경제논리에 무너지는 ‘생명권’
지난 5월 16일 이화여대 국제교육관에서 보건복지부가 주최하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 개정안과 생식세포 관리 및 보호에 관한 법률(생식세포법) 제정안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 생명윤리법 개정은 황우석 사태이후 중단되었던 배아연구를 제한적으로 허용한다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결정으로 생명위원회를 비롯한 가톨릭교회가 예민하게 대응하는 사안이다.

이번 공청회에 참가한 발표자들과 방청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같은 사안을 놓고 “어떻게 서로의 생각이 이렇게 다를까?”라는 생각을 했다. 정부, 의료계, 과학계, 산업계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나름대로의 논리를 펴며 최대한 자신들에게 유리한 입장을 반영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배아도 인간 생명이기에 배아를 파괴하는 어떠한 연구도 허용할 수 없다는 가톨릭교회의 입장은 여기에서 끼어 들어갈 바늘구멍 같은 틈도 없어 보였다.

유전자 검사와 관련된 1부에서는 특히 사설 유전자 검사 업체에서 ‘자신의 유전자 정보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며 배아 및 태아를 대상으로 하는 유전자 검사를 제한하려는 내용에 대해 반발하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그들은 유전자 검사는 의료인이 아닌 자신들도 몇 년의 경험을 쌓은 그 분야의 전문가라며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생명윤리법에서는 의료기관이 아닌 유전자 검사기관에서는 보건복지부장관의 지정을 받고 의료기관의 의뢰를 받아야 제한된 범위에서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유전자 검사와 진단의 남용으로 많은 부작용이 있기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한 발표자는 어느 유치원에서 단체로 아이들의 유전자 검사를 하여 ‘호기심 유전자’가 이상이 있는 아이는 다른 교육을 시켰는데 나중에 잘못된 것임이 밝혀졌음을 예로 들며 많은 유전자 검사가 사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반면에 방청석에 있던 어떤 산부인과 의사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유전병의 유전자가 있는 태아는 낙태시키는 현실에서 간접적으로 낙태를 용인하라는 요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유전자 검사에 의한 낙태를 합리화하는 그의 말에 기가 막힐 뿐이었다.

배아 및 줄기세포연구와 관련된 2부에서 과학계는 생명윤리법이 규제가 많아서 과학자들의 사기를 꺾는다며 연구를 위한 절차를 더 쉽게 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생명윤리법 개정안은 시험관아기를 위해서만 배아 형성을 허용하되, 잔여배아의 경우 불임치료와 희귀 및 난치병 치료를 위한 연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연구는 허용한다. 한편 인간의 난자 정자를 동물의 정자 난자와 수정시키는 행위, 동물과 인간을 막론하고 배아 끼리 혼합시키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공청회에서는 과학의 발전을 위해 사람의 정자를 동물의 난자에 수정시키는 것을 허용하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수의대 출신의 한 발표자는 배아는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들의 연구와 관련된 법은 연구윤리법은 해당되어도 생명윤리법은 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어느 방청객은 난자채취가 사소하다며 난자기증의 합법화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여성계는 배아연구를 위한 난자를 얻기 위해 행해지는 난자 채취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반박했다. 일본의 경우 난자 채취의 부작용으로1994~2002년 배란유도제에 의해 321명이 부작용을 겪었고, 그 중 5명이 사망, 전신이 회복될 수 없는 부작용을 겪게 된 경우가 7명, 반신마비?실어증 등 후유증을 앓게 된 여성은 20명이라고 보고되었는데 어떻게 생명윤리가 아닌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공방 속에서 가장 핵심적인 윤리문제인 배아의 생명권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난치병 환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도 다른 인간 생명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파괴하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음에도 경제적인 이익, 과학의 발전, 학문적인 성과를 위해서는 신성한 인간 생명마저도 단순한 물질적 도구로 사용하려는 현대의 과학기술만능, 자본주의의 거대한 파도 속에서 하느님의 창조질서가 모래성처럼 무너져가는 안타까운 현장을 목격한 하루였다.

박정우 신부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가톨릭 신문 기사입력일 : 2007-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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