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박정우 신부의 생명칼럼] 1.생명운동과의 만남

관리자 | 2008.12.15 23:21 | 조회 1357

 

 

 

 


[박정우 신부의 생명칼럼] 1.생명운동과의 만남

꾸준한 교육만이 생명감각 일깨워
필자는 2005년 12월 총대리 주교님으로부터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내정 소식을 통보받으면서 생명운동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생명윤리에 대해서 일반 신자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단편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었고 생명위원회는 물론 생명운동에 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생명위원회를 어떻게 이끌지 암담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해야할 일을 발견하게 됐고 점점 생명위원회의 활동이 풍성해 지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필자가 생명위원회 일을 맡게 된 것은 오래전부터 하느님께서 준비하시고 이끌어주신 섭리인 것 같다. 필자는 1994년부터 10여 년간 미국 뉴욕 포담대학교에서 종교사회학을 공부하였고 2004년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였다. 여성인권 등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았기에 ‘한국 가톨릭교회와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교회에 여성신학이 도입된 계기와 진보적인 한국 가톨릭 교회의 여성단체들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런데 필자의 논문지도 교수님은 미국에서 70년대 이후 계속되어온 낙태 논쟁의 전문가였다. 미국에서는 생명수호론 (Pro-life)과 선택권옹호론 (Pro-choice)이 오랫동안 대립해왔는데, 점차 두 진영의 일부는 서로 대립하는 대신 각자의 소중한 원칙과 대의명분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처음부터 원치 않는 임신이나 낙태를 유발시키는 상황들을 없애기 위해 협력하자는, 소위 ‘공동기초’(Common Ground) 운동도 실시하고 있다.

이렇게 생명윤리와 관련된 내용의 강의를 듣긴 했지만 당시에는 필자와는 별로 상관없는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필자가 이렇게 생명운동의 한 가운데 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나중에서야 “아, 하느님께서 생명운동을 위해 그동안 나를 준비시켜주셨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필자는 또한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인간의 존엄성, 인권, 정의 등의 문제를 다루는 사회교리학교도 담당하고 있는데, 사회교리에서도 낙태, 안락사 등의 생명문제는 강자에 의해 약자의 생명이 유린당한다는 것과 배아 등이 과학의 대상으로서 전락되어 존엄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다뤄지고 있다. 사실 배아연구, 낙태, 안락사, 폭력, 전쟁 등을 통해서 위협받는 생명들은 힘센 자들의 부당한 폭력으로부터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할 힘이 없는 약자들이다.

한편 생명과 인권 문제는 결국 여성과도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필자의 관심사인 여성, 생명, 인권 세 가지 주제들이 하나로 모아진다는 것이 재밌기도 하고 이 주제들을 다루는 일이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소명이란 생각도 했다.

2006년 2월 14일, 인사발령을 받고 명동 생명위원회 사무실에 처음 왔을 때는 직원 한 명과 필자를 위한 책상 하나와 컴퓨터가 전부였기에 암담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직원 숫자도 셋으로 늘어났고 함께 여기저기 물어가며 생명관련교회문헌읽기 운동을 시작으로, 생명 사진전, 뇌사시 장기기증운동, 참생명학교, 배아줄기세포 관련 홍보만화 제작, 생명교육용 영상물 제작, 매스컴을 통한 생명윤리 교육, 생명콘서트 등 많은 일을 진행해왔다. 그런 가운데 직원들이 먼저 생명윤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생명공학과 가톨릭 윤리’라는 책을 교재로 삼아 일주일에 한 번씩 스터디를 하기도 했다.

생명위원회에서의 활동은 필자가 새롭게 생명윤리를 인식하고 교회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현재 사회에 만연한 반생명적인 현상을 새로운 시각과 가치관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처럼 생명운동은 생명 현상에 대한 관심만을 갖는 것을 넘어서서 가치관과 의식의 변화를 일으켜 주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꾸준한 교육만이 40여 년간 계속된 산아제한정책으로 무뎌진 우리의 생명감각과 양심, 가치관을 회복할 수 있다.

생명운동에 무관심했던 필자의 변화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많은 이들이 생명 문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 공부하면서 생명현상 너머에 계신 하느님의 뜻을 인식하는 생명의 영성을 깨달을 수 있기를 희망하며, 앞으로 연재될 이 칼럼이 그 희망을 위한 작은 씨앗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정우 신부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가톨릭 신문 기사입력일 : 2007-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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