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홍영선 교수의 생명칼럼] 11.생명의 의미

관리자 | 2008.12.15 23:21 | 조회 1324

[홍영선 교수의 생명칼럼] 11.생명의 의미

생명경시 성찰하고 경외심 회복하자

오늘날 우리는 생명 경시 풍조와 생태학적 위기 등이 우리 사회에 만연되고 가속화 되는 가운데 생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는 생명이 무엇인지 올바로 알지 못하여 생긴 문제이며, 생명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두 달 반 동안 생명에 관한 내용을 기고하면서 부분적으로 생명의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해 보고자 노력했으나 그것으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문제는 누구에게나 근원적이고 절실한 문제의 하나이지만 아직 아무도 이에 대해서 만족스런 대답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생명의 본질이 워낙 깊고 넓은 것이어서 어떤 하나의 관점에서 간단히 다 표현할 수 없는 신비를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가정 사목 위원회’에서 1995년에 발표한 제1회 생명의 날 담화에서 “불행히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인간 생명에 대한 위협이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전쟁과 인종 청소, 테러와 폭력, 인신 매매, 인재 사고 등과 특히 낙태와 인간 배아에 대한 비윤리적 실험 안락사와 같은 생명을 거스르는 범죄 행위들이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또 어른들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도 이러한 생명 경시 풍조에 젖어 약물중독, 본드흡입, 폭력서클조직 등이 늘고 있으며 염려스러운 것은 사람들의 도덕적 양심이 점점 마비되어 인간생명의 근본 가치를 가볍게 여기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다.

최근 우리는 황우석 사태를 겪으면서 인간 생명에 대하여 우리가 너무 무식하고 무관심했음을 알게 되었고 아울러 인간 생명의 의미와 우리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혹자는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말씀을 들먹이며 인체배아를 실험목적에 사용해도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경우도 있었으나, 이는 당시 인류가 가지고 있던 과학과 현대과학의 수준의 차이를 이용한 궤변일 뿐 생명을 마음대로 파괴해도 좋다는 근거가 되지 않으며, 교회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잉태된 순간부터 생명임을 강변하고 있다. 이는 변화될 수 없는 진리이다.

또 우리는 깨닫지 못하는 사이 생명을 가볍게 여기고 이를 파괴하는 생각이나 행위에 가담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는데 이제부터라도 이에 대한 반성과 문제점을 이해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현대 사회가 워낙 복잡해지고 과학 기술이 발달하여 과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생명윤리와 관련된 문제가 생기기도하고, 전에는 없던 문제가 새로 대두되기도 하는데, 이는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며 교회도 계속해서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불치병을 가진 말기 환자와 관련된 무의미한 치료의 중단이나 사전유언의 문제는 의학의 발전으로 인위적 생명연장 기술이 늘어남에 따라 대두되었으며, 시험관 아기나 대리모의 문제 특히 타인의 정자를 사용하거나 다른 여성의 자궁을 사용한 인공수정란의 임신문제 등이 새로 생겨났다. 특히 최근 친정엄마가 딸의 난자와 사위의 정자가 수정된 수정란을 대신 잉태한 사건이 보도된 바 있는데, 이 경우 새로 태어나는 아기가 친정 엄마의 자식인지 딸과 사위의 자식인지 촌수 계산이 어려워지고 전통적 가족관계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문제들이 새로 생겨나고 있다.

또 자연은 모든 생명체의 안식처이므로 이의 위기는 이른바 생태학적 위기이고 인간 생명의 위기와 직결된다. 이러한 위기는 최근에 발생했고 극히 짧은 기간에 일어났다. 지난 200년 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공해, 자연 자원의 낭비, 긴장을 만들어 냈고, 자원고갈, 오염, 생명 종의 멸절, 산림과 자원, 습지와 갯벌의 상실은 지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으며 최근에 기후변화, 태풍, 해일 등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위기는 생명의 의미에 대한 인간의 무지와 오해에 기인하는데 아쉽게도 경제와 개발의 논리에 밀려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계속 생명과 환경의 파괴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 극복은 이를 유발한 인간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생명과 이 생명의 안식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회복하는 데 있다고 하겠다.
홍영선 교수 (가톨릭대 의대)
가톨릭 신문 2007-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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