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홍영선 교수의 생명칼럼] 10.사형제도는 폐지돼야 합니다

관리자 | 2008.12.15 23:21 | 조회 1403

[홍영선 교수의 생명칼럼] 10.사형제도는 폐지돼야 합니다

사형제 존속해도 범죄 줄지 않아

사형제도를 존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어떤 사람에게 했다는 질문이다. “만약 당신의 부인과 딸이 성폭행 후 살해되었다고 해도 당신은 사형을 반대하겠습니까?” 이 질문을 읽으면서 나도 몰래 몸서리가 쳐졌다. 아! 인간 세상이 왜 이렇게 악할까? 한 동안 말문이 막혀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보도에 의하면 현재 128개 나라에서 법적으로 또는 사실적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있는데 그 중 88개 나라에서는 사형제도를 완전히 없앴고, 11개 나라에서는 전쟁 범죄자에게만 사형 판결을 내릴 수 있으며, 29개 나라에서는 과거 10년 이상 사형판결은 했으나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는데, 한국도 금년 말까지 사형이 집행되지 않으면 이 범주의 국가로 분류되게 된다.

사형제도를 없애면 범죄가 갑자기 많아지지는 않을까? 유엔에서 1988년과 2002년에 계속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사형제도가 폐지되어도 범죄율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으로 보고되었다고 한다. 캐나다의 경우 인구 10만 명 당 살인율이, 사형제도가 폐지되기 직전인 1980년도에 2.41%이었다가 사형폐지 후 27년이 지난 2003년에는 1.73%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1985년 이후 55개 국가가 사형제도를 완전히 없앴고, 4개 국가가 없앴던 사형제도를 다시 도입 했는데, 이 중 네팔과 필리핀은 다시 사형제도를 없앴고 잠비아와 파푸아 뉴기니는 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사형제도를 폐지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보면, 첫 번째가 오심의 문제이다. 일단 사형이 집행되고 나면 차후에 판결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져도 이를 되돌릴 수 없고, 실제로 사형제도를 없앤 나라 중에는 이것이 원인이 된 나라도 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정치적 악용의 문제이다.

전 세계적으로 정치제도가 정착되지 않거나 혼란 속에 있는 나라에서 정치적 견해가 다르거나 이념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형제도를 악용한 예가 알려져 있다.

세 번째 앞에서 든 캐나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사형제도를 없애면 범죄가 줄어든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사회적 약자에게 불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법의 판결과 집행이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원칙은 만국 공통이나, 나라에 따라 사법제도의 운영상의 문제로 그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겠는데 미국의 O. J. 심슨의 경우처럼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는 경우 사형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적어지는 것이 그 예로 지적되고 있다.

다섯 번째로 사형제도의 유지가 더 이상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정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사형제도의 기본 개념과 일치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은 고대 사회에 적용되던 정의 관념의 하나로 현대사회에 적용되기 어려운 것이며, 유럽연합에서는 가입조건 중의 하나로 사형제도의 폐지를 꼽는다는 사실이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법을 전공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사형제도는 헌법 제10조에 규정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과 보호의 정신에서 벗어나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박탈 내지 제한하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형벌제도로 위헌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범죄자 중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불합리하고 어두운 측면에 의해 소외되고 편견에 시달리며 방치된 사람들이며, 우리는 그들의 범죄에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생명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으로 누구도 어떤 이유로도 이를 침해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은 고귀한 것이다. “만약 당신의 부인과 딸이 성폭행 후 살해되었다고 해도 당신은 사형을 반대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솔직하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만약 일어난다고 가정하면 아주 어렵겠지만, “그 죄인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과 아울러 그 죄인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힘도 주시도록 울며 하느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가톨릭 신자로서의 대답이지 않을까? 우리 주위에서 실제로 그렇게 행하는 사람들의 예를 보아왔다.

- 홍영선 교수(가톨릭대 의대)
가톨릭 신문: 2007-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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