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홍영선 교수의 생명칼럼] 9.탯줄 조혈모세포 - 성체 줄기세포

관리자 | 2008.12.15 23:21 | 조회 1346

[홍영선 교수의 생명칼럼] 9.탯줄 조혈모세포 - 성체 줄기세포

탯줄 혈액으로 귀한 생명 살린다

혈액에 발생하는 암의 하나인 백혈병은 치료가 어렵기로 유명하여 치료를 열심히 해도 거의 다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30여 년 전부터 골수이식의 치료법이 활용되면서 완치율이 50%를 넘고 있다.

이 치료는 백혈병 세포를 살해할 목적으로 아주 많은 양의 항암제를 투여하는 초강력 치료법으로, 암세포만이 아니라 정상적인 세포, 특히 혈액을 생산하는 엄마세포(조혈모세포)를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손상시키게 된다. 따라서 최근에는 항암제 치료 후에 환자와 유전자의 종류(조직적합성 항원)가 일치하는 정상인의 조혈모세포를 넣어주어서 혈액생산을 다시 살려내는 치료법을 사용하는데, 이를 조혈모세포 이식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환자와 유전인자 종류가 같은 공여자를 찾는 일이어서 형제가 네 명 있으면 그 중 한명이 환자와 일치할 가능성이 있으나(동종 조혈모세포이식), 요즈음에는 형제가 한 명이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공여자를 찾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타인 중에서 유전자가 일치하는 경우를 찾아 시행하는 타인 조혈모세포이식이 사용되고 있으나, 확률적으로 아주 어려운 일이어서 이 경우 공여자를 찾지 못하면 환자는 치료법을 알면서도 죽음만을 기다려야 하는 슬픈 운명에 빠지게 된다.

최근, 탯줄 속에도 조혈모세포가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1988년 프랑스에서 판코니(Fanconi) 빈혈 치료에 처음 사용된 이래 이를 이용한 조혈모세포 이식도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1990년대 말에 시작되었고 현재까지 그 사용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골수에서 채취한 조혈모세포이식의 경우 유전인자 6개가 모두 일치해야하나 탯줄 조혈모세포는 3~4개만 일치하면 이식이 가능해서, 형제 공여자가 없는 환자의 경우 타인 조혈모세포 기증자 2만 명 중 한 명 정도 공여자를 발견할 가능성이 있는 반면 탯줄 조혈모세포는 3000명 중 한 명 정도의 확률을 가지고 있다. 탯줄혈액에는 조혈모세포의 수가 골수에서 채취하는 경우보다 약 10배 높아, 100ml 정도만 있으면 이식이 가능한데, 탯줄 한 개에서 이 정도 양의 채취는 어렵지 않으며 또 산모나 아기에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다.

매년 조혈모세포 이식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2000~3000명 정도 새로 진단되고 그 중 3분의 2가 적합한 공여자를 찾지 못해 죽음에 이르는 현실을 감안하면 어차피 버려질 탯줄 혈액을 기증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것이 고귀한 일임을 실감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매 년 45만 명 정도의 아기가 태어나는데 타인을 위한 탯줄 혈액 기증이 5000명도 채 안되고 있다고 한다. 돈을 받고 탯줄혈액을 보관하는 회사도 있으나 많은 비용을 내야하므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이들이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며, 가톨릭교회 안에서의 탯줄 혈액 기증 운동은 이웃 사랑운동일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미래에 나에게 닥칠지 모르는 불행에 대비하는 일도 되겠다.

얼마 전 생명윤리 논쟁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때에, 생명을 파괴하는 일이기 때문에 배아 줄기세포를 만드는 것 자체를 반대했던 가톨릭교회가 대안으로 제시했던 성체 줄기세포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탯줄 혈액에 들어있는 조혈모세포를 포함하는 줄기세포가 되겠다.

따지고 보면 가톨릭대학에서 국내 최초로 시행하여 발전 시켜온 조혈모세포 이식은 줄기세포의 존재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이전부터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난치병을 치료해 온 좋은 예가 되겠다.

또 탯줄혈액에는 우리 몸속에 있는 연골이나 뼈, 신경, 근육 등을 만드는 간엽줄기세포가 많이 들어있는데, 이 세포들을 이용하여 척수마비와 같은 신경 손상으로 인한 마비나 간경화, 뼈나 관절의 병, 심장병, 파킨슨 병, 당뇨병 등 여러 가지 난치병의 치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며 일부 좋은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무심하게 버려지는 탯줄 혈액으로 누군가의 꺼져가는 귀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아기를 낳기 8주전에 한마음한몸운동본부나 가톨릭조혈모세포 은행, 파티마병원 탯줄혈액은행에 전화를 한 번 하는 수고를 해봄직 하겠다.

홍영선 교수 (가톨릭대 의대)
가톨릭 신문 2007-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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