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홍영선 교수의 생명칼럼] 5.무의미한 연명치료, 왜 하나요?

관리자 | 2008.12.15 23:20 | 조회 1378

[홍영선 교수의 생명칼럼] 5.무의미한 연명치료, 왜 하나요?

죽음 과정 연장하는 ‘의료집착’ 중단을

몇 년 전, 안락사에 대한 TV토론회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당시 출연자 중 안락사를 찬성하는 어느 시민단체 대표에게 찬성 이유를 묻자, 과거 임종이 가까웠던 자신의 친척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친척을 중환자실로 모시고 가서 여러 가지 주사를 놓고 검사하는 동안 환자는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받았고 제대로 된 임종을 맞이하지 못했노라고 하였다.

이 분의 친척은 결국 생존기간을 늘이지도 못하면서 불필요한 검사와 치료, 그리고 심장이 멎은 후에는 심폐소생술까지 시행한 경우였다. 그 과정은 환자의 입장에서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연명치료의 시도로, 의료인과 가족의 입장에서도 환자의 삶을 연장한 것이 아니라 죽음의 과정을 연장한 것 뿐이어서, ‘의료집착’의 경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사실 이러한 경우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다고 할 때, 인위적으로 수명을 단축하고자 의도하지 않고 자연적인 인생의 경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보면, 적극적인 ‘안락사’ 보다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으로 분류해야 할 경우라고 하겠다.

금년 서울의 모 대학병원에서 미국 암학회에 발표한 내용을 보면 암 병동에서 말기 암환자에 대한 항암치료를 심지어 임종하기 1주일 전까지도 시행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하였고, 무의미한 치료로 분류될 가능성이 있는 치료가 현재 우리 의료현장에서 얼마만큼 남용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가 되겠다.

1981년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에서 펴낸 ‘중환자와 임종자에 관한 윤리문제1’에서 지적한 내용을 보면, “환자의 조건으로 보아 이미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특정한 의료 행위들을 그만두기로 하는 결정(전통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예외적 요법을 포기하는 결정’이라고 하겠다)”이 ‘안락사에 속하지 않는 행위와 결정’에 포함되어 있어, 모든 경우에 모든 치료법을 다 사용할 윤리적 의무가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항상 그렇지 만은 않다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정상적이며 관습적으로 사용되는 그런 수단(영양공급, 수혈, 주사 등)은 언제나 사용되어야 하고, 이런 최소한의 처치마저 중단해 버린다는 것은 실제로 환자의 생명이 끝나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라고 하여 말기 환자에게 의미 있는 연명치료는 반드시 시행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 1995년 교황청 보건사목평의회에서 발표하고 가톨릭 중앙의료원에서 발간한 ‘의료인 헌장’에서 보면, “사실 현대의학에서는 환자에게 실질적으로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인공적인 생명연장 방법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이 방법은 단지 사람을 살아있게 하는 것 또는 혹독한 고통이라는 더 큰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일시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 바 ‘의료 집착’으로, 인공적으로 환자의 고통을 연장시켜 환자들을 더 고갈시키고 고통스럽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연명치료의 중지는 환자의 요구에 의한 것이지 의사의 일방적인 중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호스피스법과 호스피스에 대한 의료보험 수가의 제정이 시급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정부에서도 이의 제정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시점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동의가 필요하며, 현재 한국의 의료관계법들은 이를 완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 우려되어 시급히 이에 대한 관계 전문가들의 논의가 있어야 하겠다.

어서 빨리 한국에서도 호스피스법과 보험수가가 제정되어 호스피스가 활성화되고, 말기 환자들의 고통스러운 증상들은 적극적인 노력으로 제거되고, 무의미한 연명 치료 대신 편안한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 제도화가 이루어져야 하겠다.

“선생님 살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지 않게만 해 달라는 것 입니다. 그것도 못해주십니까?”라고 울부짖는 말기환자 가족의 울음 섞인 호소가 옛이야기가 될 날을 기대해 본다.

홍영선 교수 (가톨릭대 의대)

가톨릭 신문 2007-09-02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