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홍영선 교수의 생명칼럼] 4.말기 암환자 돌보기, 호스피스가 해답

관리자 | 2008.12.15 23:20 | 조회 1718

[홍영선 교수의 생명칼럼] 4.말기 암환자 돌보기, 호스피스가 해답


호스피스 제도화 위한 노력 절실

고등학교 교사인 이선생님 댁은 요즘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2년 전 수술을 받으셨던 아버님의 위암이 6개월 전에 재발한 이후, 항암제 치료를 했지만 복수가 차고 식사를 못하실 뿐만 아니라 배가 아파서 뒹구시는 빈도가 높아져 다시 병원에 입원시켜 드렸다. 아파하시는 아버님을 뵈면 병원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고, 집으로 모셔서 대체의학이라도 해보자니 의사도 펄쩍 뛰고 문제해결이 될 것 같지 않아 결정을 못하고 있다. 간병인에게 간호를 의뢰했고 부인과 번갈아 밤에만 아버님을 찾아뵙는데, 비용도 만만치 않고 혹시 병원에서 아버님을 퇴원시키라고 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힘이 드는 것은 둘째치고 고3인 아들을 돌보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데 딱히 좋은 해결책이 없는 형편이다.

한국에서 한 해에 암 진단을 받는 환자는 약 11만 명, 말기 암으로 돌아가시는 분은 약 6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말기 암환자의 가족도 필연적으로 고통 받는 것을 감안하면 한 해 약 30만 정도의 한국인이 말기 암과 관련된 이유로 여러 가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가족 중에 환자를 돌 볼 수 있는 인력이 없고 집에서 장례를 치르기도 어려워 병원으로 모시고 가는데 입원실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고, 입원해도 별로 반가워하지도 않아 오래 계시기 어려운 현실이다.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모시고 어디로 가야 할까? 어떤 때는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느니 일찍 임종하시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면 못 쓰지 하면서 눈시울을 붉히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머지않아 임종이 예견되는 환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그 분들이 겪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도록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하나의 팀을 이뤄 도움으로써, 말기 환자가 인간으로써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다가 임종하시도록 돕고, 환자의 임종 후 가족이 겪는 사별의 고통까지 도와드리는 의료행위를 기반으로 한 활동을 말한다.

현대 호스피스는 1960년대 중반 영국의 시슬리 손더스라는 여의사가 런던에서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를 시작한 것이 효시이고,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국가에서는 의학의 한 분야로 발전하여 현재 완화의학과라는 이름으로 전문의가 활동하고 있고, 그 밖에도 환자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분야의 전문가라면 누구든 팀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1965년에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이 강릉에 갈바리 의원을 세워 최초로 가정 호스피스를 시작했고, 1980년대에 호스피스 활동이 활성화되었으며 그 중심에 가톨릭교회가 자리해 왔다.

호스피스는 인위적으로 환자의 수명을 연장하거나 단축하려 하지 않고 단지 환자들의 고통스러운 증상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호스피스에서 말기 환자들을 돕기 위해서는 많은 기자재, 시설, 인력이 필요하므로 보통 병원보다는 비용이 많이 들게 된다. 대신 도움도 되지 않는 치료나 검사를 피할 수 있어 암환자나 에이즈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호스피스는 의료비용을 절약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다만 환자나 가족이 의미 없는 치료지만 끝까지 하도록 요구할 때에는 따르지 않으면 의료인들이 법적으로 제제를 받게 되는 상황이어서 무의미한 치료의 중단을 인정하는 호스피스법이 필요한데, 일본이나 대만에서는 이미 이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거나 시행되고 있다.

또 호스피스의 비용을 전부 정부나 의료보험에서 부담하는 것은 어려워 선진국에서는 기부금이나 기금모금에 의존하고 있고, 우리도 이런 전통을 세우고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국가가 돌봐야하는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로 호스피스 제도화를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하나 교우들의 적극 참여와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마태 25, 40)

홍영선 교수 (가톨릭대 의대)
가톨릭 신문 2007-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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