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홍영선 교수의 생명칼럼] 2.암이라는 사실 알려야 할까요?

관리자 | 2008.12.15 23:20 | 조회 1589

[홍영선 교수의 생명칼럼] 2.암이라는 사실 알려야 할까요?

환자는 자신의 병 알 권리 있다

김 할머니는 전쟁 중에 청상과부가 되었지만 모든 정직한 노력을 다하여 유복자를 포함한 세 자녀를 키운 분이었다. 다행히 세 자녀는 훌륭하게 자라 유복한 가정을 꾸리게 됐고, 할머니가 하실 일은 자녀들의 효도를 받으며 노후생활을 즐기는 일 뿐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딱히 아픈 곳 없이 시름시름 앓고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 자녀들이 병원으로 모시고 온 터였다. 검사해보니 위암이 복강 내로 퍼져 항암치료를 해도 채 일 년을 넘기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며 전신 상태가 나빠서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판단이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자녀들에게 “위암 말기로 진단됐고, 항암치료 조차 어려울지 모르며, 예상수명이 일 년을 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통보하고 항암치료 하기를 원하는지 물었다. 자녀들이 매우 슬퍼하며 결정이 어렵다고 하자 필자는 할머니의 의견을 여쭤보는 것은 어떨지 물었다. 그러자 아드님이 울면서 “선생님, 우리 어머니에게 절대로 암이라는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됩니다. 암으로 돌아가시는 것만도 불쌍한데 어떻게 사형선고와 같은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고통은 저희들만 받을 테니 어머니께는 위궤양이라고, 선생님께서 주시는 약을 열심히 드시면 나을 수 있다고만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대답했다. 당시 가족이 원치 않는 병명통고를 환자에게 하면 가족과 의사간의 신뢰관계가 깨져 치료를 계속 진행하는 것이 어려워, 당분간 비밀로 할 것을 약속했다.

그 이후 의사, 간호사는 물론 그 효성스런 자녀들도 할머니께 병명을 알리지 않으려고 개인적인 대화는 피하게 됐고, 할머니는 외로운 나날을 보냈다.

어느 날 저녁, 원목 수녀님이 병실방문 중 할머니께 붙잡히게 됐고, 할머니는 수녀님에게 하소연했다. “제가 별 배운 것 없이 이날까지 살았으나 중병에 걸린 것을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닙니다. 다만 제가 이것을 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알면 슬퍼할까봐 아는 체를 못하고 있습니다만,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아이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싶은데 어찌해야 좋을런지 수녀님께서 도와주십시오.” 수녀님은 그 사실을 의료진에게 알렸고 의료진은 다시 자녀들에게 연락했다. 자녀들은 울며 어머니와 마음의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고, 할머니는 더 이상 외로워하지 않고 자녀들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면서 증상조절을 하시다가 편안히 하느님 나라로 돌아가셨다.

죽음에 관해 공공연히 언급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우리 문화에서 불치병으로 간주되는 암이라는 진단의 통보는 곧 죽음의 통보로 간주됐고, 또 환자가 투병의지를 잃을 것을 우려하여 진단을 숨기고 가족들끼리만 논의하던 경향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점차 많은 환자들이 자신의 병이 예후가 나쁜 경우일지라도 정확히 알기 원하며 가족들도 그렇게 하도록 동의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암의 진단 및 예후 통보가 옳은 방법인지, 한다면 누가, 언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정확한 지침이 없었다.

최근 발표되는 많은 논문들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의료인들의 경우 80년대에는 18%의 의사들만이 병명통고에 찬성 했으나 최근의 연구에서는 80% 이상의 의사들이 찬성하며, 환자와 가족의 대부분이 병명통고에 동의하고 있다. 병명이나 예후의 통보는 가급적 환자와 마음의 대화를 할 수 있는 가족이나 친지, 또는 종교지도자가 하도록 권고하며 안되면 의사가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연구에서 환자의 70% 이상과 가족의 반 정도는 주치의가 진단 즉시 알리기 원하였다. 그 이유로는 전문가이고,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 해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병명과 예후의 통고는 환자에게는 지극히 중요하며 치료과정에서 환자와 의사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감정 상태와 기능 수행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아울러 환자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정확히 아는 것은 존중돼야 마땅한 환자의 권리이며, 환자의 상황대처능력과 희망에 대한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한편, 정직해야 하고 환자의 편에서 모든 결정을 해야 한다는 일반원칙을 강조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무조건 감추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 아닐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하겠다.

홍영선 교수(가톨릭대 의대)

<가톨릭 신문 게재, 2007-8-12>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