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홍영선 교수의 생명칼럼] 1.“아프지 않게만 해 주세요”

관리자 | 2008.12.15 23:20 | 조회 1299

가톨릭 신문 [홍영선 교수의 생명칼럼] 1.“아프지 않게만 해 주세요”


말기 암환자 고통 줄이는 제도 절실

통증은 암환자를 괴롭히는 고통 중 가장 흔하고 심한 증상으로 잘 조절되지 않으면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없을뿐더러 암환자의 투병 의지까지 없애게 되고, 환자의 남은 삶을 우울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 된다.

따라서 암 환자의 통증은 적극적으로 조절해야 하며 대부분의 경우 통증이 심하여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게 된다.

일반인은 물론 의료인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암환자에게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면 마약 중독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A군은 침샘에 생긴 암을 가지고 있던 환자로 여러 차례의 수술과 항암치료를 거쳤으나 종국에는 치료에 반응하지 않고 진행되어 말기 암 상태로 강남성모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환자였다.

처음에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여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였고 적은 용량으로 조절되지 않아 급기야는 많은 양의 주사용 모르핀을 사용하여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

A군은 발병 전까지 아주 사교적이고 쾌활한 생활을 하던 대학생으로 통증만 없으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하는 등 유쾌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암 환자의 통증조절 원칙 중에는 가능하면 환자의 남은 삶의 기간 동안 병원에 얽매이지 않고 원하는 방법으로 살게 하기 위하여 경구용 진통제로 조절하라는 것이 있어 의료진은 주사용 모르핀의 양을 먹는 모르핀으로 환산하여 투여하였다.

문제는 주사로 하면 잘 조절되던 통증이 먹는 약으로 바꾸면 조절되지 않는 것이었고, 의료진은 몇 번을 주사약과 먹는 진통제를 처방하는 사이에서 방황하였다.

어느 날 환자의 어머니가 먹는 진통제를 반 쯤 빼고 환자에게 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어머니는 젊은 아들이 불치의 암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매우 슬프게 생각하고 있던 분이어서 일부러 환자를 골리려고 진통제를 빼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어머니의 대답은 자신의 아들이 마약 중독자가 될까봐 두려워 약을 반 쯤 덜어내고 아들에게 주었다는 것이었다.

한국 호스피스 완화의료학회에서는 2001년에 이어서 두 번째로 2006년 9월부터 10월 사이에 전국의 63개 대학병원, 종합병원에서 암환자 치료를 담당하는 98명의 의사들의 참여로, 7119명의 암환자를 대상으로 통증에 대한 조사를 시행했다.

암환자의 45%가 통증을 가지고 있었으나, 통증을 가진 환자의 58%가 병원에서 해 주는 통증조절에 만족스럽지 않다고 하였고 그 분들의 86.4%가 완치 여부를 떠나 통증이 없어지기를 바란다고 하였으며, 반 수 이상에서 통증 때문에 잠을 못 자거나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다고 하였다.

환자들의 일부는 의료인들이 자신의 통증을 과소평가 한다고 느끼거나 의료인들이 귀찮게 여길까봐 통증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하지 못한다고 대답하였다. 그 분들의 60.8%가 ‘더 오래 살지 못해도 좋으니 아프지만 않게 해 주세요’라고 답을 하여 통증 조절이 그 분들에게는 얼마나 절실한 문제인가를 여실히 나타내고 있었다.

또 이 조사에 참여한 의료인의 80% 이상이 이 환자들의 통증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이 부족했거나 환자들의 통증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인정하여 암환자, 특히 말기 암환자의 통증조절에 문제가 있었음을 나타냈다.

이 결과는 2001년의 결과에 비해서 의료인들의 통증조절에 대한 인식이나 지식이 많이 호전된 사실을 나타내지만, 아직도 한국의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통증에 대한 교육이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음을 나타내며, 환자나 가족들의 통증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는 것도 통증조절을 방해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므로, 우리 사회 전체가 이 분들의 고통에 관심을 보이고 그것을 덜기 위한 제도를 확립하는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참여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완치시켜 달라고 하진 않으니 제발 아프지만 않게 해 주세요”라는 이야기가 암환자 분들의 입에서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

홍영선 교수 (가톨릭대 의대)
가톨릭 신문 2007-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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