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과학의 눈으로 본 신앙] 10.우물안 개구리

관리자 | 2008.12.15 23:25 | 조회 1312

[과학의 눈으로 본 신앙] 10.우물안 개구리
상상 속의 세상


평생 우물 바깥으로 나와 본 적 없는 ‘우물 안의 개구리’를 생각해보자. 이 개구리가 바깥세상을 본 것은 우물에 뚫린 구멍이 전부이다. 그렇지만 그 구멍을 통해서 하늘에는 구름도 지나가고 눈도 오고 비도 오면서,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고, 밤에는 어둡고 낮에는 밝아진다. 우물구멍을 통해서 관찰한 것을 토대로 개구리는 세상을 상상한다.

인간도 이 우주가 어떻게 생겼나 많은 상상을 한다. 천체망원경을 통해서 보는 우주는 망원경의 능력, 시공간, 과학적 추론 등 물리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기원전 340년 전 그리스의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이 흙, 공기, 불, 물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또 당시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고 태양, 달, 행성, 항성 모두가 지구 주위를 원 궤적으로 돈다고 믿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 후에도 1500년이 넘게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땅은 넓은 판이고 하늘에는 태양과 별이 걸려있고 저 멀리 바다 끝은 낭떠러지라고 믿었다.

이 인식은 근대에 들어오면서 깨진다. 이후 뉴턴이 발견한 역학법칙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어 놓았고 르네상스를 불러왔으며 사람들은 중력이론을 영원불멸할 법칙으로 믿게 되었다. 그러나 이 법칙도 깨지고 만다.

1929년 허블이 우주가 팽창해간다는 것을 관찰하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우주 전체가 정지 상태에 있다고 믿었다. 이제 사람들은 빅뱅이론을 내어 놓고 태초에 우주는 렙톤과 쿼크로만 이루어진 아주 작은 점이 대폭발하여 시작되었다는 믿는다. 물질이 있기 이전의 초고에너지 상태가 거대하게 폭발한 것이 우주 창조라는 것이다. 그 작은 우주의 온도는 상상을 초월했고 우주는 서서히 팽창하며 식어간다는 설이다.

우리가 사는 시공간은 빛이 구부러져오는 역동성을 가졌다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시간이 공간과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추론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고 다시 미래로 가는 공상소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의 좌표가 역으로는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온 광추면(시공간 좌표의 경험한계)이 인류가 관찰할 수 있는 한계이고 추론할 수 있는 한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한계 속에서 인간은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라며 갑론을박 하고 있다. 그 시공간 밖에 나가본 경험이 없는 인간은 그 시공간 밖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지 못한다. 우물안 개구리인 것이다.

인간은 우주와 같은 거대한 시공간을 보는 데만 한계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미소한 세계도 인간은 한계를 갖고 더 이상 못 보는 세계가 있다. 최근에 터널링 현미경을 사용하여 나노 크기까지는 본다. 그러나 그보다 작은 세계, 즉, 원자 내부의 핵자 또는 미립자 그리고 렙톤, 쿼크와 같은 수준에 도달하면, 사이클로트론, 신클로트론과 같이 거대한 장치를 이용하여 소립자를 가속하고 그 궤적을 사진으로 담아 계산하여 “아마 이렇게 존재할 것이다”라고 계산하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 인간이 알고 있는 과학이란 어떤 것인가? 인간은 각종 과학 도구를 발명했고 전자현미경, 천체망원경을 통해 관찰하는 시공간의 범위를 넓혔다. 그리고 그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과학자들은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그려냈다. 하지만 우리는 거시세계의 이론과 미시세계의 이론이 충돌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채 더 이상 한발짝도 못나가고 있다.

우물 안의 개구리! 인류가 경험한 광추면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보지 못하고 그저 상상할 뿐이다. 그리고 그 광추면과 양자역학은 인류가 영원히 초월할 수없는 한계인지 모른다.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은 지금 우리가 그린 세상을 보고 “그 당시 인간들은 그 정도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겠구나”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인류가 본 우주와 소립자는 전체의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거시세계도 미시세계도 한계를 가지고 보지 못하며 추론과 계산에 의존하는 것이 전부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들은 오늘도 상상의 날개를 펴며 보지도 못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신앙은 그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한다.

국일현(그레고리오·원자력연구소 책임연구원·과학기술부 원자력안전전문위원)
[가톨릭 신문, 기사입력일 : 2007-0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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