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과학의 눈으로 본 신앙] 5.허상 뒤의 진실

관리자 | 2008.12.15 23:24 | 조회 1299

[과학의 눈으로 본 신앙] 5.허상 뒤의 진실

지구별에 사는 인간

그리 멀지 않은 옛날에는 달에는 토끼가 산다고 생각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1940년대 우리나라가 일본에 강점당했을 때 아버지 어머니들이 부르던 노래이다. 은하수는 강이요 초승달은 그 위를 떠가는 배다. 그리고 그 배에는 계수나무 한 그루와 토끼 한 마리가 있다. 국가를 잃고 표류하는 한 민족의 설움을 담은 노래다.

1950년대 유행했던 신파극에서 달은 의인화 되었고, 사람들은 달을 친구로 여겼다. “형아 저 달 참 크재?” “저 달은 죽은 울 엄마가 어디서 뭘 하는지 알긋재?” 추석 때 집 뒤 동산에 있는 엄마 무덤 앞에서 둥근 달을 쳐다보며 어린동생이 형에게 하는 이야기다.

“임마, 기땅거는 와 뭇노?” 형은 콧물을 씩 훔치며 동생 머리통에 알밤을 주고는 달 속에 있는 토끼를 쳐다본다.

현재는 어느 누구도 달에 토끼가 살고, 그 달이 엄마 간 곳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불과 몇 십 년 전에 어머니들은 자식 하나 낳게 해달라고, 또는 자식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정안수 떠 놓고 달에게 빌고 또 빌었다.

과거에는 별똥별이 떨어지면 큰 인물이 죽었다고 하고, 달과 별의 운행은 인간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별을 보고 점을 치고, 가물면 하늘에 빌어 기우제를 지냈다. 그 때는 인간이 하늘에 빌줄 아는 ‘경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어떤가.

이제 우리는 초당 250㎞ 이상의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지구라는 거대한 우주선 속에 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우리는 이 사실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지구는 초당 400m의 엄청난 속도로 자전을 하지만 그 때문에 어지러움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태양의 운행을 보며 “해 쪽으로 지구가 돌고 있다”라고 말하지 않고, “해가 뜨고 있다” “해가 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지구가 23.5도 기울어져 태양을 돌면서 “마주 보는구나”또는 “비스듬히 보는구나”라고 말하지 않고 “여름이 왔다” “겨울이 왔다”고 말한다.

우리는 밤 하늘의 별이 보이는 곳으로 곧장 가면 그 별로 도착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또 그 별이‘현재’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밤하늘 별의 모습은 그 별이 떨어진 거리만큼 과거의 별을 보는 것이다. 만약 10광년 떨어진 별이라면 우리는 10년 전 별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게다가 빛은 중력장에 의해 구부러진다.

그렇다면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가 보는 것, 아는 것이 모두 진실의 전부인가. 현대인은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아는가. 아니면 내 삶이 급하여 바쁘게 살면서 한치 앞도 보지 못하고 진실을 외면한 채 그럭저럭 매일 매일 살아가는가.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다른 사람보다 많은 지식을 가졌다거나 하느님 생각에 맞는 삶을 살아서가 아니다. 교만한 마음일지는 모르지만, 성경을 비과학적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진실을 말하고자 함이다. 우리가 모든 진실을 모른다고 하는 바로 그 진실 말이다.

정말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공상과학 영화를 믿고 사는 것인지, 계수나무 옆의 토끼를 믿는 것인지…. 공상과학영화에 빠져 과학세계에 산다고 믿고 있고 달을 의인화해서 그 문학세계에 살고 있는 것일까.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면서, 마치 자신이 우주의 주인인 것으로 착각하며 사는 것이 우리다. 어떤 이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비행기를 타고 날아다니며 온 세상과 거래하고 회의를 한다. 인터넷과 정보망으로 시장과 경제를 장악한다.

그러다가 환태평양 지진대에 생긴 지각 변동으로 일어난 일본 고베의 대형 지진과, 태국 푸케트의 쓰나미, 미국 뉴올리언스에 허리케인 카타리나 소식을 접하고, 비로소 “아! 우리가 자연이라는 엄연한 현실 속에 살고 있구나”라고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지구내의 작은 변화는 우주의 신성 출현, 별의 소멸과 같은 거대한 천체의 변화에 비하면 엄청난 작은 변화일 뿐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마치 하느님을 능가할 수나 있는 것처럼 과학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참 교만하다.

우리는 누구인가.

국일현(그레고리오·원자력연구소 책임연구원·과학기술부 원자력안전전문위원)
[가톨릭 신문, 기사입력일 : 2007-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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