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과학의 눈으로 본 신앙] 1.믿어야 하는 이유와 근거

관리자 | 2008.12.15 23:24 | 조회 1324

[과학의 눈으로 본 신앙] 1.믿어야 하는 이유와 근거

“못 믿겠으면 보고라도 믿어라”


지난 5월 1일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임종 직전, 나는 어머니 귀에 대고, “엄마, 먼저 가세요. 하느님 만나 뵙고 엘리사벳이 왔다고 꼭 첫 인사부터 하세요. 그레고리오는 나중에 갈 터이니 가서 만나요.” 라고 작별인사를 했다.

어머니 본명은 엘리사벳이다. 37년 전 세례를 받으셨고 그 후 줄곧 묵주를 옆에 끼고 사셨다. 주일이면 꼭 초 하나를 사서 성모님께 바치고 성당 맨 앞자리에서 앉아서 미사에 참례하셨다. 모든 식구가 잘되게 해달라고 하나씩 하느님께 기도하는 게 하루의 일과이신 분이셨다. 자식 밖에 모르고 사시던 그 착하던 ‘엄마’는 틀림없이 하느님 나라에 가셨을 것으로 나는 믿는다.

내 나이 벌써 60이다. 나도 하느님 대전에 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머니께 생전에 불효한 것을 떠 올려 본다. 그리고 나를 키울 때 기도하시던 사랑스런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어미를 잃은 자식에게 하늘나라는 무조건 있어야 하는 절대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반면에, 한 푼이라도 더 벌어 가계를 꾸리기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뛰는 30~40대 가장에게는 하늘나라는 존재 한다하더라도 관심 밖의 존재가 되기 일쑤다.

어머니를 잃은 아들은 어머니는 저 세상 어디엔가 그리고 이 세상보다 더 좋은 곳에 꼭 계셔야 한다. 더구나 그 어머니나 아들이 그리스도교 신자이면 꼭 하늘나라에 가셨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확신에 가득차 있다. 신앙이 깊지 않거나, 냉담중인 이들도 부모를 잃은 후 하늘나라의 존재를 생각하고, 하느님을 믿기 시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하나둘 사라져가고 자식은 점차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세월이 지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느님 나라에 대한 믿음도 점차 사라져 간다. 수십 년이 지나고 무덤에 풀이 수북해지면 그것은 단순히 어머님이 묻힌 물리적인 땅이요, 하느님이란 인간이 만든 공허한 허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하느님은 실제로 존재하시는 건가. 창조주 하느님이 계셔서, 지금도 우리의 운명과 죽음을 관장하시는 것인가. 우리가 살아있을 때는 하느님이 우리의 운명과 죽음을 관장하시더라도, 우리가 죽은 후에는 어떻게 하실 수는 없지 않은가.

사람은 죽은 후 동물과 마찬가지로 썩어 없어지는데 과연 영혼이라는 것이 별도로 남는가. 만일 영혼이 따로 남아도 하느님이 사람의 영혼을 만나고 별도로 구원해 주시는가. 정말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이웃을 사랑하며 착히 살면 우리는 구원을 얻는가.

만일 이러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면 신앙 가진 사람은 가장 바보이고 믿음은 부질없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존재와 영혼과 구원이 없다면 예수님 가르침을 따라 믿고 사랑하며 살 필요가 없다. 하느님이 있더라도 나와는 상관이 없는 존재일 뿐이다.

우리는 죽기 전에 세상을 최대한 이용하며 악착같이 누리며 살아야 한다. 따라서 종교와 신앙을 죽음과 떼어놓고 “그냥 믿어라”라고 하면 그 믿음은 세상 살아가는데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 믿음이 된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토마스에게 못 자국을 보여주시며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1, 29)라고 말씀 하셨듯이, 보지 않고도 믿는 굳은 신앙심을 가진 신자는 진실로 행복하다.

그러나 신앙이 없는 대부분의 현대인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하루 하루 이윤만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실증’을 전제로 한 실험 과학자들은 습관적으로 증거 없이 믿지 못한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보지 않고서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1, 25)라고 한 토마스와 같이 증거를 보고서야 믿는 것이 현대의 일반 상식이다. 내 손가락을 넣어보고 내 손을 넣어서 확인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필자가 이글을 쓰는 이유는 신앙을 믿어야 하는 이유와 근거를 요구하는 현대인에게 하느님 존재를 확인하고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증거 없이 믿는 사람은 진실로 행복하다. 그러나 확실한 증거를 보고서라도 믿으면 주님 품으로 갈 수 있는 그 나마의 기회라도 주어지므로 다행스러운 것으로 생각된다. 이글에서 보여주는 증거를 보고도 못 믿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하다.

국일현 (원자력연구소 책임연구원 과학기술부 원자력 안전전문위원)
가톨릭 신문, 기사입력일: 2007-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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