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제2회 생명수호 체험수기 대상-중] 사랑의 징검다리

관리자 | 2008.12.15 23:32 | 조회 1287

평화신문 2008. 06. 08발행 [973호]


"제2회 '생명수호체험수기' 대상 - 사랑의 징검다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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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루치아, 의정부교구 의정부1동본당)


지금까지도 유독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 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 이름은 재필이. 그 아이는 신경모세포종을 앓고 있었다. 신경모세포종은 교감신경에서 생기는 악성종양으로 재필이는 촬영 당시 암세포가 머리와 온몸으로 전이된 상태로, 조혈모세포 이식 이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축구와 태권도 등 운동을 유달리 좋아했던 14살 재필이는 그렇게 조혈모세포 이식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다.

 재필이에게는 어릴 적 사고로 혼자서는 버스도 타지 못하고, 돈 계산도 하지 못하는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엄마와 아빠가 있다. 3년 전 사고로 물에 빠져 죽은 누나를 대신해서 재필이는 환자이면서도 스스로 엄마, 아빠의 보호자 역할을 자청했다. 재필이 아버님은 재필이가 그저 심한 감기를 앓고 있는 것이라고, 조금 있으면 자연스레 나아질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누나를 하늘로 먼저 떠나 보낸 재필이 아버님은 재필이가 자신의 곁에 없는 것을 불안해 한다. 어느샌가 재필이도 누나를 따라 멀리 가버릴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필이가 병원에 입원하는 것조차 그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14살 재필이는 그런 아빠에게 아무 일 없을 거라며, 누나가 자신을 지켜줄거라고, 금방 돌아오겠노라고 몇 번이고 다짐하고서야 이식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할 수 있었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해 재필이는 자신 안의 나쁜 백혈구를 죽이기 위한 독한 항암치료를 시작하며, 하늘에 있는 누나에게 기도를 했다. 누나를 대신해 엄마, 아빠를 지켜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렇게 엄마, 아빠를 생각했던 재필이는 조혈모세포 이식 하루 전날 그렇게 허망하게 하늘로 기약없는 여행을 떠났다. 유달리 운동을 좋아했던 재필이가 저 넓은 하늘에서 지금쯤 누나와 함께 하늘 구름 위를 마음껏 달리고 있을 것만 같다.

 그때 사실 나는 하느님께 야속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세상에 내려온 아기천사들을 왜 다시 그렇게 일찍 하느님 옆으로 일찍 불러가시려 하는 것인지, 그럴 거라면 왜 이 땅에 그들을 내려보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느냐며 지금 하느님이 실수하고 계신 거라고 나중에 후회하실 거라고 참 많이도 투덜거렸다.
 
 시간이 흘러 나는 지금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다. 소중한 나의 아들, 요한 크리소스토모. 그 아이가 처음 내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왔을 때 나는 크나큰 두려움에 쌓여 있었다. 소중한 생명이 내 안에 함께 한다는 기쁨과 설렘보다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건 아마도 미혼시절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아파하고 힘들어 하던 많은 아이들을 지켜보며 '내 아이도 아프면 어쩌나'했던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나의 첫 아이, 소중한 아들에게 그런 내 감정을 먼저 전달해 준 것이 지금까지도 너무 미안하다.

 처음 산부인과라는 곳을 들어가서 진찰을 받고, 초음파 사진을 찍는데 조그맣게 보이는 아기집. 그 작은 집 안에 0.5cm도 안되는 크기의 내 아이가 자라나고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내 아이와의 10개월 동거생활. 나는 매순간 하느님께 이렇게 청했다. "제 안의 또 다른 작은 생명에게 건강을 허락해 주시고, 순산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 아이에게 내려주신 재능을 발견하여, 당신께서 바라시는대로 그 아이를 이끌어 나가도록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부디 그 어린 영혼에게 건강을 허락하는 은총을 내려 주십시오."

 엄마의 마음이 아이에게도 전달된 건지, 10개월간의 기나긴 동거생활 내내 남들 다 한다는 입덧 한번 하지 않고 건강한 내 아이를 안아볼 수 있었다.
 
 항상 엄마, 아빠에게 웃음을 선사해주는 근사한 우리 아들 요한 크리소스토모. 난 아들에게 풍족하진 않아도 가난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해주고 싶어서, 훗날 하고 싶다는 것에 대해 뭐든 지원해 주고 싶어서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헌데 그것이 오히려 아이에게 마음의 짐을 지워주는 것은 아닐까.
 직장맘인 나로 인해 100일 막 지나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나의 아들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아니 다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내지고 있다는 것이 더 맞을 듯 싶다. 그래서일까, 그 무렵부터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유달리 잔병치레가 많아졌다. 지금도 아이의 코에서는 콧물이 흘러내린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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