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배마리진 수녀의 생명칼럼] 8.냉정한 계약

관리자 | 2008.12.15 23:28 | 조회 1798

[배마리진 수녀의 생명칼럼] 8.냉정한 계약

사랑과 생명은 분리할 수 없다

계약으로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 것인가?

요즘 결혼하는 부부 7쌍 가운데 1쌍이 불임이다. 공공연하게 우리나라에서도 난자, 정자매매가 성행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한 방송인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하였다고 밝혀 화제가 되었다. 불임 여성이 정자 기증자와 난자 기증자, 자궁기증자의 도움으로 임신하는 현상뿐만 아니라 미혼인 상태에서 임신과 출산을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의 시험관 대리모 시술 규모는 짐작하기 어려우며, 대리모 계약과 시술 과정에서 각종 불법과 탈법, 인권침해가 횡행한다고 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계약으로 사고 팔 수 있는 것일까? 계약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계약이란 당사자 간의 의사 합의로 성립하는 법률행위이며 사물을 다루고, 상거래 관계에 속한다. 계약자 간의 물질적인 손해를 유발하면 파기할 수 있는 것이며 일정 기간만 유효하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전역에서 인간의 생명을 두고 장기매매, 성매매, 난자와 정자매매 등이 계약이라는 이름으로 실물 거래되고 있다.

1986년 미국에서는 1만 달러를 받고 대리모 임신계약을 맺은 여성이 출산 뒤 상대방에게 출산아의 인도를 거부한 사건(베이비 M 사건)이 일어나, 대리모계약 자체가 유효한가, 친권을 어느 쪽으로 인정하여야 하는가 등을 둘러싸고 법적인 쟁점이 된 사건이 있었다.

메리 베스 화이트헤드는 불임 부부와 대리모를 연결해 주는 뉴욕의 한 불임회관에서 남편의 동의 없이 대리모가 되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처음 의도는 좋았다. 자신은 건강한 자궁이 있고, 아이도 낳아서 키우고 있었으며 불임 부부에 대한 동정심도 있었고 돈의 유혹도 있었다. 그래서 대리모계약서에 동의했으나 막상 아기를 낳은 뒤에 자신의 딸과 닮은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메리의 남편인 리차드 화이트헤드는 몇 년 전 정관수술을 했는데, 아내의 아이이되, 결코 자신의 아이일 수 없는 아이의 모습을 보았을 때 충격, 그리고, 큰 아이가 “내 동생을 돈 받고 팔 거야?” 하고 물었을 때 놀라움과 고통이 있었다. 베이비 M 사건은 본인에게는 물론 다른 이들에게도 많은 고통과 시련을 준 사건이었다.

메리 베스 화이트헤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사건 이후 그녀는 미국 전역을 다니며 인간의 감정이 변화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내가 만약 베이비 M이라면 나는 누구인가 생각해 보자. 나는 누구의 자녀인가? 난자를 제공한 사람인가 낳아 준 사람인가?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냉정한 계약으로 처리한 뒤에 생겨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정자나 난자를 기증받은 어떤 이들에게는 생물학적인 아버지나 어머니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사자인 태아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한때 사라질 수 있었던 수많은 인공수정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생존자이며 거래와 계약의 대상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끔찍한 사건이다.

인간의 생명은 상거래의 대상일 수 없으며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필요할 때 준비했다가 필요 없으면 버리는 물건이 아니다. 자녀는 온전한 선물로서 보내 주신 분이 거두어 가실 때까지 보호하고 돌보아야 할 소중한 선물이다. 생명이 여자의 힘만으로 혹은 남자의 힘만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알 수 없는 신비가 숨겨져 있다. 생명을 받아들인 사람은 안다. 생명은 언제나 사랑 안에서 시작되었으며, 사랑과 생명은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생명은 사랑 안에서 태어나야 하고 사랑 안에서 자라야 하기에 남성과 여성의 몸에 각각 생명의 가능성을 나누어 담아 놓은 것이다. 나의 출생이, 사랑의 결합에서 왔다는 것과 차갑고 어두운 시험관의 조작에서 왔다는 사실은 엄연히 다르다. 생명의 존엄성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생명을 인간의 소유적인 의미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기원은 하느님의 사랑이다. 생명조작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분리된 사랑과 생명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생명과 사랑이 분리되어 있는 한 냉정한 계약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더욱 하락시키며 우리를 끝나지 않는 분쟁의 미궁으로 끌고 갈 것이다.

배마리진 수녀 (한국 틴스타 대표·착한목자수녀회)
[가톨릭 신문 : 2007-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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