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배마리진 수녀의 생명칼럼] 6.자아를 확립한 인간됨

관리자 | 2008.12.15 23:28 | 조회 1767

[배마리진 수녀의 생명칼럼] 6.자아를 확립한 인간됨

‘사랑’에서 ‘나’의 존재 근원 찾자

얼마 전에 친구와 명동 거리를 걷다가 입회 전에 많이 갔던 백화점 앞을 지나게 되었다. 백화점 카드로 물건을 많이 구입했던 때가 문득 생각났다. “내가 수녀원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카드빚으로 고생 좀 했겠지?”하고 그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때는 왜 그랬냐고 물어왔다. “자아확립을 못해서지, 뭐”하고 말해서 한바탕 웃었는데 알고 보면 생활방식과 자존감은 많은 연관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충고나 쓴소리 혹은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그런 사람과는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사고방식과 대인관계를 맺는 방식은 그 사람의 자존감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아를 확립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평가에 쉽게 흔들리고 행복과 불행이 다른 사람에게서 온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 잘난 사람이고 싶은 마음,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의 근본적인 갈망은 무엇인가? 사랑받음으로써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얼마 전 미국에서 방영된 오프라 윈프리의 토크쇼에서는 평소 식습관에 문제가 있던 뚱뚱한 한 여성이 위절개술을 받은 뒤 살을 빼서 아주 날씬하게 되었지만 자신의 정체성까지 흔들리면서 심리적인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고 증언했다.

자아를 확립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자아가 확립되었다고 하는 말은 자존감이 높다는 말과 같다. 나 자신에 대한 분명한 확신, 자신감이 있으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결과에 만족해하고 다른 사람의 주관적인 말과 평가에 그다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자아확립이 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어려서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 선생님의 칭찬에 의해 주로 생기며 사명으로 더욱 확고해진다.

틴스타 수업 시간에 청소년에게 자신의 주위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세 사람을 쓰고 그들에게 있어 모범이 될 만한 덕목 세 가지씩을 적어 보라고 한 적이 있다. 청소년이 적어 낸 덕목은 놀랍게도 복음 안에서 말하고 있는 진복팔단의 덕목과 다르지 않았다. 결국 행복으로 초대하는 삶은 늘 총체적인 인간완성을 지향하기 위한 의지를 포함하는 도덕적으로 선한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과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발견한 것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의미를 ‘행복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행복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오고 가는 것이 아니며 기쁨이나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고 한다. 행복은 ‘충만함’으로 영혼안에 깊이 내재되어 있는 ‘깊은 평화’라고 했다. 결국 행복이란 이미 내 안에 있고 우리 주위에 있다는 것이다.

마테를링크의 동화 ‘파랑새’에서 행복의 상징으로 나오는 파랑새는 ‘추억의 나라’에도 ‘미래의 나라’에도 ‘밤의 궁전’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혹시 발견했어도 검게 변하거나 빨갛게 변했고 혹은 금방 죽어버렸다. 그러나 주인공 틸틸과 미틸이 그렇게 헤매어 찾던 파랑새는 잠에서 깨어난 현재 자신의 집 안에 있었다. 그것을 잡으려 하면 날아간다는 것을 말해 줌으로써 행복이 무엇인지 말해 주고 있다. 행복은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아를 확립해가는 과정에서 방황했던 경험이 있다. 문화 안에서 성차(性差)로 인한 차별이라든가 피부색깔, 얼굴 생김새, 키, 몸무게 및 성적 등으로 평가받았던 경험이 있다. 부모님, 선생님 혹은 친구와의 관계 안에서 현재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형성할 수 있을까?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예수님의 당당한 자신의 신원과 몸에 대한 태도를 보자. 나라는 존재의 근원이 하느님 사랑의 흘러넘침에서 온 생명이라는 몸에 대한 시선의 회복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내가 하느님께 예속된 인간이라는 신원의식은 나를 현세의 어떤 판단에서도 자유롭게 할 것이다. 나는 사랑에서 왔으며 나의 근원은 사랑이라는 믿음으로 자아가 확립되면, 자신감을 갖고 자신을 충분히 존중하기 때문에 나를 더 확실하게 하느님께 맡기고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격려하는 말 한마디, 생명으로 서로의 몸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통해 우리의 자아를 건강하게 형성하는 데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배마리진 수녀 (한국 틴스타 대표·착한목자수녀회)
[가톨릭 신문, 기사입력일 : 2007-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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