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배마리진 수녀의 생명칼럼] 5.생활방식과 서약

관리자 | 2008.12.15 23:28 | 조회 1655

[배마리진 수녀의 생명칼럼] 5.생활방식과 서약

‘사랑’ 중심에 둔 서약생활 실천하자

수도성소나 사제성소의 감소가 교회의 미래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가정의 해체가 교회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의 출발점인 가정교회의 붕괴가 이혼과 성소감소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서약생활에 대한 시선과 태도의 변화는 아주 사소해 보일 수도 있는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안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혼인과 성직 혹은 수도생활의 서약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지녀온 각자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 가운데 특별히 무가치하게 느껴지면서도 반복되는 좋지 않은 생활습관은 내가 서약한 헌신적인 관계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이것들은 끊임없이 관계와 정서 그리고 영성생활에 영향을 주면서 크고 작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습관이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을 말한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제 버릇 개 줄까.’ ‘천생 버릇은 임을 봐도 못 고친다’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습관은 고치기 어렵다는 말이다. 심리학에서는 먹고 자는 것에서부터 생각하고 반응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어떤 행동이든 습관이 될 수 있으며, 습관은 강화와 반복을 통해 발전한다고 한다.

지나친 알코올의 섭취와 그에 동반되는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행동 때문에 이혼하는 많은 가정을 본다. 파괴되는 가족 안에 또 다른 생명이 방임되거나 희생되며 다른 폭력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낳고 있다. 도박이나 카드 사용, 소비에 대한 습관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가족이 있다. 자매와 마땅히 나눠야 할 사랑의 실천에는 크게 미흡한데도 지나치게 관념적인 사색과 독서에만 몰입하는 수도자도 있다. 과식과 편식, 지나친 청결, 운동중독과 건강강박 등으로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좋지 않은 습관이란 하루 아침에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유혹이 아주 서서히 부드럽고도 매혹적으로 찾아오듯이 좋지 않은 습관도 아주 서서히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관계를 소진시키며 우리의 힘과 자유를 훼방하면서 잠식하여 들어오는 것이다. 결국 아주 사소했던 습관이 마침내 나의 행복뿐만 아니라 나와 관계 맺은 사람의 행복마저도 빼앗게 되는 것이다.

행복을 지향하며 가족계획을 하고자 했던 부부가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인공피임에 습관이 들면 배우자의 몸과 마음의 질서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습관적으로 성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인공피임의 신체적, 정서적, 영적 폐해에 무감각해 질 수 있다. 참고 기다리고 인내하는, 서로에 대한 존중의 능력이 감소함에 따라 행복하고자 했던 원래의 뜻과는 달리 계속해서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자위행위에 습관이 든 사람은 헌신적으로 사랑하겠다는 혼인의 약속을 잊고 부부생활 안에서도 홀로 사랑하는 행위를 아주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 있다.

인터넷의 음란물이나 게임에 빠져든 이는 즐겁고 쉬운 방법을 선택하면서 힘들지 않는 방법으로 욕망을 해소하려는 습관에 젖어들 수 있다. 이것은 비단 결혼생활 뿐만 아니라 독신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도 치명적으로 신체와 정서 그리고 관계에 영향을 미치면서 서약생활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이다.

서약은 계약이 아니다. 서약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파기할 수 없는 약속이며 일정기간이 아닌 영원히 유효한 공약이며 하느님께서 보증하신 성사이다. 이러한 성사의 삶으로 초대된 사람이 이기적인 마음으로 자녀를 두려고 가족계획에 타협하고 습관에 젖어들면서 어떻게 성소의 증가를 꿈꾸겠는가? 어떻게 건강한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를 맺겠다는 것인가?

복음서 전반에 걸쳐 사랑이 생활방식을 포함하고 넘어선다는 것을 예수님은 가르치고 계시다. 그 시대의 문화, 생활양식, 습관을 넘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행적이 우리에게 전하는 일관된 메시지는 바로 사랑이다. 우리는 각자 고유한 생활방식과 습관을 가지고 서약생활을 하고 있다. 사랑이 이러한 습관과 생활방식을 넘어서도록 초대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오로가 외쳤던 것처럼 우리도 외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 희망을 이미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달음질칠 뿐입니다.”

배마리진 수녀 (한국 틴스타 대표·착한목자수녀회)
[가톨릭 신문, 기사입력일 : 200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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