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배마리진 수녀의 생명칼럼] 3.금욕과 성숙의 관계

관리자 | 2008.12.15 23:28 | 조회 3043

[배마리진 수녀의 생명칼럼] 3.금욕과 성숙의 관계

금욕은 ‘억제’가 아닌 ‘봉헌’

‘금욕’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왠지 억지로 참아야 하는 어떤 것, 중세기의 어둡고 캄캄한 수도원의 검은 장막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 많은 미혼자와 독신자 그리고 부부생활을 하시는 분들을 만나면서 금욕 안에 담겨 있는 가치는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된다. ‘성숙’하지 않다면 금욕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과 성숙한 사람이야말로 금욕생활을 강박관념 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춘기를 넘어서면서 우리는 성적인 결합에 대한 욕구와 능력이 커지게 된다. 동시에 성적 욕구를 자극하는 여러 요소들을 접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더욱 이성에 대한 매력을 느끼고 성적으로 하나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느끼면서, 또 이러한 욕망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식별과 판단을 요청받게 된다. 이때 우리는 매우 이성적이며 영성적인 국면에 직면하게 되는데 우리가 어떠한 응답을 내리는 가에 따라 우리의 성소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결혼생활로 응답을 하고 어떤 이는 독신의 삶으로, 또 어떤 이는 수도자의 길이나 성직의 길로 응답한다.

금욕은 성숙하기에 비로소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성숙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통제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가령 우리가 대소변을 가리는 것도 통제하는 것을 배웠기에 비로소 가능해진 것이다. 걷거나 말할 때 우리는 수많은 근육을 제어하는 것을 배웠기에 지금 걷기도, 말하기도, 또 뛰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성숙한다는 것은 우리의 능동적인 통제에 대한 훈련과 분명히 상관관계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화가 날 때마다 화를 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성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에게 ‘성욕발동을 억제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성욕을 왜 억제해야 하는데요?’라는 반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다시 그들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욕을 억제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분명 능동적인 통제와 강박으로 인한 억제는 다른 의미다. 능동적인 통제란 강박이 없고 자유로운 선택 하에 내리는 결단과 행동을 말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고, 가치가 있기 때문에 참는 것이다.

호르몬의 변화와 생리적인 발달로 신체적·심리적으로 성숙되어 갈 때 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은 하나의 성숙을 향한 과업인 것이다.

오래 전에 신문지상에서 남한으로 전향하지 않은 고령의 장기수가 풀려나 북으로 가면서 고백한 내용을 담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이념이나 정치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을 반드시 다시 만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하면서 기다렸다고 한다. 이 장기수의 고백처럼, 미혼자에게도,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도, 또 독신생활을 하는 누구에게도 더 큰 가치를 위해 성욕은 단순히 억누르는 것이 아니고 보다 성숙한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사랑’ 때문이다. 결국 사랑이란 관계를 맺는 능력의 발달이기 때문이다.

생명과 사랑은 가장 안전하게 보호받아야 하기에 그러한 자리가 마련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미혼자들이 결혼하기까지 금욕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의 선포를 위해 가족과 물질을 모두 버리고 가난과 정결, 순명을 서원한 수도자와 성직자는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는 데 자신을 쓰고자 응답하며 금욕하는 것이다. 배우자의 불의의 사고나 질병 앞에서, 임신과 출산 앞에서, 가족의 건강과 행복의 증진을 위해 기혼자들은 자발적으로 금욕을 선택한다. 이는 억제가 아니라 봉헌이며 성적인 성숙에 내포된 모든 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내어 놓겠다는 헌신의 응답이다.

성적 욕구를 이기심, 자기의 욕구로만 사용하지 않고 사랑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 내가 가진 성적 에너지를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알고 실천하는 일은 총체적인 인간 성숙으로의 초대에 능동적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그 응답은 미혼자, 기혼자, 수도자 그 어떠한 형태의 삶 안에서도 성장을 위한 과제인 것이다. 이 과제는 늘 위기가 따르지만 우리가 이 과제를 성실히 수행할 때 우리는 성숙으로 한 걸음 더욱 나아가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배마리진 수녀 (한국 틴스타 대표·착한목자수녀회)
[가톨릭 신문, 2007-11-11]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