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배마리진 수녀의 생명칼럼] 2.내 몸은 지구촌의 몸

관리자 | 2008.12.15 23:27 | 조회 1593

[배마리진 수녀의 생명칼럼] 2.내 몸은 지구촌의 몸

생명·사랑 고려한 성적 결단 내리자

초등학교 때 내 친구 중 한 명의 부모님은 여인숙을 운영하셨다. 어느 날 그 집에 놀러가서 나는 아주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마루에서 어떤 여인이 아주 슬픈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방에서 나오던 아저씨가 건네는 돈을 받더니 가방을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돈을 준 아저씨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마당 한 가운데에 있는 우물물을 퍼서 세수를 하였다. 나중에 친구에게 그 아줌마는 누구냐고 물었더니 남자들이 부르면 돈을 받고 잠을 자러 오는 사람이라고 말해 주었다. 조금 더 커서 그들이 성을 사고팔았다는 것을 이해했지만 그때는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다.

이제 중년이 된 나는 그때 그 시절보다도 훨씬 더 많은 형태로 성을 사고파는 것을 목격한다. 드라마, TV 오락 프로그램, 영화, 음악 및 뮤직비디오, 광고, 성인의 날 행사, 키스 아르바이트 등 현대 사회가 만들어 내는 성적 세력은 사람의 몸을 이용해서 더 많은 물건을 판매하려고 유도한다.

아름다운 말과 현란한 몸짓으로 성을 이용해서 음료수도 팔고 침대도 팔고 차도 팔고 아파트도 판다. 성이라는 것이 사람의 시선을 가장 잘 끌고 유혹할 수 있는 강한 메시지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올 여름 에이즈 환자와 성매매 여성을 돕기 위해 수녀회에서 파견된 수녀님들을 지원하려고 중국 남부 지역의 도시에서 약 일주일간 머물렀다. 밤 시간을 이용해서 수녀원 뒤편의 거리로 들어가 보았다. 낮에는 평범한 여염집으로 보였던 집들에서 붉은 불빛이 흘러나왔고 거리로 나와서 뜨개질을 하거나 넋이 나간 눈빛으로 밤 손님을 기다리는 초라한 여인들은 성을 팔고 살아가는 여성들이라고 함께 간 수녀님이 말해 주었다.

그곳 수녀원에서 보게 된 미국에서 보내온 시사 잡지에는 그곳에서 일하는 성매매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이 에이즈의 원인 바이러스인 HIV의 보균자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곳의 여성들은 대부분 자신의 감염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간다고 했다. 우리의 사명이 그곳까지 달려가게 하였지만 우리는 과연 얼마나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그들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잘 알려진 사진작가가 아프리카에서 찍어 온 사진 중에는 아주 인상 깊은 한 아이의 얼굴이 있다. 그 아이는 부모에게서 에이즈 원인인 HIV가 수직 감염된 아이다.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으면서 웃어 보라고 여러 번 부탁했지만 그 아이의 두 눈 밑은 눈물이 이슬처럼 가득 맺혀 있었다.

그 아이가 사회를 보는 시선은 무엇이었을까? 그 아이는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는 걸까?

지금 내가 가진 돈을 지불하고 아무 생각 없이 구매하는 성이 혹시 미래의 무고한 나의 아이들과 이웃을 성인 성 질환의 피해자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지, 내가 지금 팔고 있는 정보나 상품이 아름다고 거룩해야 할 인간의 성을 가치 하락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겠다.

인간 몸의 가치를 도구화 하거나 수단화 하는 행동에 대한 개선과 시선의 회복이 없는 한 지구상에는 무고한 피해자들이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며 그러한 피해는 당사자인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과 이웃을 포함하게 될 것이다. 마치 성이라는 것이 육체적인 관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듯 잘못된 성의 결과는 육체적, 심리적, 사회적, 영적으로 원치 않은 고통을 주위 사람들에게 전염시킬 것이다.

우리는 현대의 거대한 성 문화 안에서 성적인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을 피해갈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 성적 주체로 결정을 내려야 하며 그 결정 안에 고려해야 할 요소로써 내 몸 안에 담겨 있는 생명과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몸을 어떻게 사용하는 가에 따라 지구촌을 죽일 수도 또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전인적인 결단을 내려야겠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는 이론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작고 사소한 사건 하나가 나중에 커다란 효과를 가져 온다는 의미로 쓰인다. 내가 하고 있는 아주 사소해 보일 수 있는 행동이 나에게 혹은 상대와 가족에게, 그리고 우리의 이웃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숙고하며 성적 결단을 내리며 살아가야겠다.

나의 몸에 담겨 있는 성은 나 자신이면서 나 자신을 넘어서는 거룩한 실존임을 받아들이고 어떠한 폭력도 침투할 수 없도록 퇴치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배마리진 수녀 (한국 틴스타 대표·착한목자수녀회)
[가톨릭 신문, 2007-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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