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과학의 눈으로 본 신앙] 25(끝). 하느님 나라의 실현

관리자 | 2008.12.15 23:27 | 조회 1486

[과학의 눈으로 본 신앙] 25(끝). 하느님 나라의 실현

불변의 하느님 앞에 회개하라

많은 현대 과학자들은 우주 팽창과 빅뱅을 믿는다. 스티븐 호킹은 지구가 둥글고 경계가 없듯이 우주와 시공간은 경계가 있을 수 없다고 제안하였다. 더구나 현대과학은 과학법칙이 서로 충돌하는 것을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현실에서 두 개의 물리적 현상이 충돌해 기상천외한 일이 생긴 일은 한 번도 없다.

인류가 지금까지 관찰과 측정을 통해 알아낸 과학지식은 그야말로 ‘우물 안의 개구리’이고 진리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끝없이 많은 진리와 진실이 인간의 관찰과 측정 저 너머에 남아있다. 그러나 일반 현대인들은 상식 수준의 지식을 갖고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보이지 않는 우주를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과학으로 덧칠하여 서술한 것은 엄청난 오류였다. 주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과학적 또는 논리적으로 표현하려고 편법을 사용하였을 뿐이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를 볼 때가 되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를 먹는 자는 죽지 않고 살아…”(요한 6, 10~51).

예수님은 모든 이에게 자신의 살을 먹고 다시 살기를 권하셨다. 지고지순한 사랑.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놓아 모든 이에게 나누어 주신 사랑이다.

계곡에서 보면 산 전체를 볼 수 없지만, 산 위에 올라가 보면 산 전체가 보인다. 성경 전체에서 예수님을 만나듯이 우주 만물 전체를 보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우주, 별, 태양, 탄소-질소-산소 주기, 빛과 에너지, 지구와 지각 위의 환경, 생명과 생태계, 세포와 기관, 먹이사슬과 광합성, 탄소-질소-산소-수소의 고분자, 원자와 핵, 미립자와 쿼크, 존재와 우리. 이 모든 개체의 역할과 전체의 조화를 보면 비로소 우리가 산 위에서 보듯이 모든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진리와 조화, 시공간, 질서와 체계, 자연스럽고 당연함. 이 모든 것은 지고(至高)의 사랑, 즉, 하느님이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주십시오. …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 21~23).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 예수님의 몸을 나누어 먹어 하느님과 한 몸이 되는 것. 이것이 살면서 우리가 되어야 하는 모습이고, 죽은 후 다시 살아서 되어야 하는 모습이다. 예수님은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우리 모두가 하느님과 하나가 되기를 바라신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라고 하셨다. 하느님과 같이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 세상 이익에 앞서 하느님 뜻에 따라 진리와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이다.

예수가 죽은 후 제자들은 믿음이 사라졌고 추종 세력으로 몰려 죽을 것이 두려워 모두 달아났다. 사흗날에 예언하신 대로 부활하신 예수를 보고 제자들은 모두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다. 목숨을 버리며 이웃을 사랑하는 길을 실천한 것이다. 인간은 나약한 제자들의 모습과 같이 세상사에 두려워 일시적으로 하느님을 배반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부활한 예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진 다음에는 하느님을 닮아 완전한 진리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고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 25).

예수님은 나자로를 살리시는 기적을 행하시고 믿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다. 죽은 사람이 썩어 탄소, 질소, 산소, 물 그리고 다른 물질로 분해되는 것만 믿는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다.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살아서 육체를 지배하던 에너지는 어디로 갔는지 허무한 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갑자기 사라진 이온화 에너지와 정신 지배 에너지는 분명히 불변인데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보이지 않는 세상.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느님 나라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이라는 가르침은 불변이다.

이제 나도 우물 밖으로 나와 회개할 때가 됐다. 내 이익을 위해 하느님을 무시하고 교만하게 산 삶을 되돌아봐야 하겠다.

국일현 (그레고리오·대전 공주 중동본당·원자력연구원 연구위원·한국방사선산업학회장)
[[과학의 눈으로 본 신앙] 25(끝). 하느님 나라의 실현

불변의 하느님 앞에 회개하라

많은 현대 과학자들은 우주 팽창과 빅뱅을 믿는다. 스티븐 호킹은 지구가 둥글고 경계가 없듯이 우주와 시공간은 경계가 있을 수 없다고 제안하였다. 더구나 현대과학은 과학법칙이 서로 충돌하는 것을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현실에서 두 개의 물리적 현상이 충돌해 기상천외한 일이 생긴 일은 한 번도 없다.

인류가 지금까지 관찰과 측정을 통해 알아낸 과학지식은 그야말로 ‘우물 안의 개구리’이고 진리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끝없이 많은 진리와 진실이 인간의 관찰과 측정 저 너머에 남아있다. 그러나 일반 현대인들은 상식 수준의 지식을 갖고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보이지 않는 우주를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과학으로 덧칠하여 서술한 것은 엄청난 오류였다. 주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과학적 또는 논리적으로 표현하려고 편법을 사용하였을 뿐이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를 볼 때가 되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를 먹는 자는 죽지 않고 살아…”(요한 6, 10~51).

예수님은 모든 이에게 자신의 살을 먹고 다시 살기를 권하셨다. 지고지순한 사랑.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놓아 모든 이에게 나누어 주신 사랑이다.

계곡에서 보면 산 전체를 볼 수 없지만, 산 위에 올라가 보면 산 전체가 보인다. 성경 전체에서 예수님을 만나듯이 우주 만물 전체를 보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우주, 별, 태양, 탄소-질소-산소 주기, 빛과 에너지, 지구와 지각 위의 환경, 생명과 생태계, 세포와 기관, 먹이사슬과 광합성, 탄소-질소-산소-수소의 고분자, 원자와 핵, 미립자와 쿼크, 존재와 우리. 이 모든 개체의 역할과 전체의 조화를 보면 비로소 우리가 산 위에서 보듯이 모든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진리와 조화, 시공간, 질서와 체계, 자연스럽고 당연함. 이 모든 것은 지고(至高)의 사랑, 즉, 하느님이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주십시오. …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 21~23).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 예수님의 몸을 나누어 먹어 하느님과 한 몸이 되는 것. 이것이 살면서 우리가 되어야 하는 모습이고, 죽은 후 다시 살아서 되어야 하는 모습이다. 예수님은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우리 모두가 하느님과 하나가 되기를 바라신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라고 하셨다. 하느님과 같이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 세상 이익에 앞서 하느님 뜻에 따라 진리와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이다.

예수가 죽은 후 제자들은 믿음이 사라졌고 추종 세력으로 몰려 죽을 것이 두려워 모두 달아났다. 사흗날에 예언하신 대로 부활하신 예수를 보고 제자들은 모두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다. 목숨을 버리며 이웃을 사랑하는 길을 실천한 것이다. 인간은 나약한 제자들의 모습과 같이 세상사에 두려워 일시적으로 하느님을 배반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부활한 예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진 다음에는 하느님을 닮아 완전한 진리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고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 25).

예수님은 나자로를 살리시는 기적을 행하시고 믿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다. 죽은 사람이 썩어 탄소, 질소, 산소, 물 그리고 다른 물질로 분해되는 것만 믿는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다.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살아서 육체를 지배하던 에너지는 어디로 갔는지 허무한 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갑자기 사라진 이온화 에너지와 정신 지배 에너지는 분명히 불변인데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보이지 않는 세상.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느님 나라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이라는 가르침은 불변이다.

이제 나도 우물 밖으로 나와 회개할 때가 됐다. 내 이익을 위해 하느님을 무시하고 교만하게 산 삶을 되돌아봐야 하겠다.

국일현 (그레고리오·대전 공주 중동본당·원자력연구원 연구위원·한국방사선산업학회장)
[가톨릭 신문: 200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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