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성소수자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
- 교도권 문헌들의 분석과 전망*1)
박 준 양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조직신학)
Ⅰ. 서론
Ⅱ.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기본 관점: 1975년 문헌
Ⅲ.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심화 전망: 1986년 문헌
Ⅳ. 「가톨릭 교회 교리서」(1992)의 종합
Ⅴ. 가톨릭 교육 맥락의 문헌들
VI. 동성 결합 합법화에 대한 반대 문헌들
VII. 교황청 가톨릭교육성의 2005년 문헌
VIII. 프란치스코 교황의 2016년과 2019년 권고
IX. 젠더 이론에 대한 문헌들
X. 결론: 진정한 인격적 실현을 향하여
Ⅰ. 서론
오늘날 성소수자(sexual minorities)에 관한 이슈는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으며,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변화를 보이고 있다. 세상과 단절되지 않고 세상 안에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교회이기에, 이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기본 입장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은 신학적으로나 사목적으로 모두 시의성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논문은 성소수자와 관련한 현대 교도권의 공식 문헌들을 살펴보고 분석하며 관련된 전망을 제시하도록 하겠다.
한 가지 먼저 밝혀야 할 것은 용어 문제이다. 교도권의 관련 문헌들은 주로 ‘동성애’(homosexuality)나 ‘동성애자’(homosexual)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오늘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성소수자’라는 표현이 일반화되기 이전에 대부분의 문헌들이 작성, 발표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교도권 문헌에 나오는 ‘동성애자’라는 표현은 기본적으로 오늘날의 ‘성소수자’라는 의미, 혹은 ‘성소수자’ 중 많은 수를 차지하는 ‘동성애자’라는 의미로 치환해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성소수자’는 보다 넓은 의미를 지니며, 이와 관련된 여러 구분과 용어들을 포괄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본고에서 사용되는 ‘성소수자’라는 용어는 오늘날의 이른바 ‘퀴어’(Queer) 개념이 아니라, ‘동성애’나 ‘동성애자’ 표현만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현재의 여러 경향들까지도 포괄하는 매우 일반적이고 객관적 의미의 표현이 될 것이다. 교도권 문헌들은 거의 대부분 ‘동성애’나 ‘동성애자’라는 표현으로 일관하지만, 최근의 문헌에서는 그 외의 흐름과 경향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기에, 이를 모두 포괄한다는 논리학적이고 중립적인 의미에서 ‘성소수자’라는 표현을 본고에서 사용하기로 한다.
본 논문에서는 성소수자와 관련한 특정 문제 혹은 전반적 문제에 관해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교회의 현대 교도권 문헌에서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을 제시하는지를 교회 문헌 연구라는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분석해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선행 연구들에서는 주로 ‘동성애’와 관련한 별도의 주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부차적으로 혹은 그 전제적 차원에서 이와 관련된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간략히 설명 또는 인용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본고는 이 주제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 자체를 교회 문헌 연구 차원에서 분석하면서 관련 전망을 제시하도록 하겠다.
Ⅱ.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기본 관점 : 1975년 문헌
성소수자에 관해 언급하는 현대 교도권의 문헌 중 가장 먼저 발표되어 기초가 되는 것은,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1975년 12월 29일자 문헌인 「성 윤리상의 특정 문제에 관한 선언」이다. 신앙교리성은 신앙과 도덕에 관련한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입장을 정립하고 제시하는 교황청 주무 부서이다. 성윤리 전반에 관해 다루고 있는 이 문헌의 내용 중 8항이 해당 주제에 대해 말하는데, 이 기본 관점은 나중에 발표된 교도권 문헌들에서도 계속 인용되며 보완, 확대된다. 여기서는 먼저 동성애자의 두 가지 범주에 대한 구분을 말한다.
“동성애의 경향(tendency)이 잘못된 교육, 정상적인 성적 발달의 결여, 그릇된 습성, 잘못된 본보기나 그 밖의 유사한 원인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에 일시적이거나 적어도 불치가 아닌 동성애자를, 태생적 본능이나 병리적 체질로부터 발생하였기 때문에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동성애자와 구분하는 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이 두 가지 범주의 구분은 성소수자에 대한 교회의 인식에 중요한 기초를 제공한다. 여기서는 ‘치료 가능성’이 구분의 기준이 되고 있으며, 이 구분은 이후 교도권 문헌에서 이루어지는 ‘경향(상황)’과 ‘행위’의 구별과도 연결된다. 즉, 첫 번째 범주의 사람들이 일시적 ‘경향’이나 ‘상황’에 머물러 있는 경우에는 치료 가능한 상태로 보고 있기에 직접적인 윤리적 판단이 유보된다. 두 번째 범주는 치료가 어려운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는데, 따라서 이에 대한 사목적 배려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자연적인 상태라고 인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며, 나아가 이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본 입장이 표명된다.
“객관적 도덕 질서에 따르면 동성애 관계는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목적이 결여된 행위이다. 이는 성서에서 심각한 타락으로 단죄되었고, 하느님을 배척하는 슬픈 결과를 자아내는 것으로까지 제시된다. 물론 성서의 이런 판단으로 인해, 이러한 비정상성으로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이 거기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동성애 행위는 내재적으로 무질서한 것이고 어떤 경우에도 인정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 인용문은 이후의 교도권 문헌에서 계속 인용되는 핵심적인 기본 관점을 제시한다. 위에 언급된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목적”이란, ‘부부관계는 혼인의 계약 안에서 사랑과 자녀의 출산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을 가리키는데, 이는 가톨릭교회의 기본 교리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근본 목적이 결여된 관계는 인정될 수 없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가톨릭교회의 교리에서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선한 존재인 동시에, 원죄에 물들어 죄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성을 지닌 존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의 구원 은총을 필요로 하며 거기에 응답해 협력해야 한다. 하느님의 창조 질서와 구원 계획에서, 인간은 구원의 대상이자 또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맥락에서, 성(性)의 의미와 목적 역시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협력해 남녀 간의 사랑과 인격적 결합을 통해 자녀 출산을 이루게 된다는 점과 깊은 연관을 갖는다. 이러한 신학적 기본 관점은 이후의 교회 문헌들에서도 전체적으로 강조된다.
다른 한편으로, 신앙교리성의 1975년 문헌은 “사목적 차원에서는 이러한 동성애자들을 이해심을 가지고 대하여야 하며, 그들의 개인적 어려움과 사회에 대한 부적응을 극복하려는 희망을 북돋아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교회의 사목적 배려(pastoral care)에 해당하는 설명이다. 하지만 “동성애 행위가 그들의 조건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거기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그 어떤 사목 방법도 적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Ⅲ.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심화 전망 : 1986년 문헌
1. 1975년 문헌과의 연속성
본 논문의 주제와 관련한 신앙교리성의 두 번째 문헌은 1986년의 「동성애자 사목에 관하여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이다. 1975년 첫 문헌이 성윤리 전반에 대하여 다루면서 이 문제를 언급한 것이라면, 1986년의 두 번째 문헌은 온전히 이 주제와만 관련해 더욱 심화되어 작성된 것이다. 따라서 이 주제에 관한 성서 해석 등 주목할 만한 새로운 관점들이 추가적으로 제시된다.
3항에서는 1975년 문헌과의 연속성이란 맥락에서 그 기본 입장이 제시된다. 먼저 1975년 문헌에서 제시된 “동성애 상황 또는 그 경향과 개별적 동성애 행위 사이의 구별”을 재확인한다. 하지만 “동성애 상황 자체에 대하여 지나치게 온화적인 해석이 대두되었음”을 지적하면서, “동성애자의 특수한 성향이 죄는 아니지만, 그것은 내재적인 윤리적 악으로 기울어지는 다소 강력한 경향”이기에, “그 성향 자체는 하나의 객관적 무질서로 인식되어야 한다”(3항)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사목적 배려”가 필요하지만, “동성애 활동 안에서 이러한 경향성을 살아나가는 것이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이라고 믿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함”(3항)을 강조한다. 이는 “생명을 전달하는 보완적 결합이 아니기에”(7항) 인정될 수 없는 것이다.
2. 성서 해석
4-6항에서는 이 주제와 관련한 성서 해석이 제시된다. 사실, 이는 현대 교도권 문헌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 주제와 관련된 성서 해석 내용을 제시하는 중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1975년 문헌에서는, “이는 성서에서 심각한 타락으로 단죄되었고, 하느님을 배척하는 슬픈 결과를 자아내는 것으로까지 제시된다”는 짧은 언명만 있었으나, 여기에서는 보다 풍부한 내용이 제시된다.
먼저 이 주제와 관련해, “성서에는 동성애 문제에 관한 언급이 전혀없다거나, 성서가 다소 암시적으로 이를 인정하고 있다든가, 또는 신앙교리성의 윤리적 권고는 모두 문화에 예속된 것이므로 현대 생활에는 더 이상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4항)들은 모두 잘못된 것임을 밝힌다.
이어서 성서 해석의 원칙을 제시한다. 즉, 성서 기록과 편찬 과정에서 “현저한 다양성이 있음에도, 성서 그 자체에 동성애 행위의 윤리 문제에 관한 분명한 일관성이 있다는 사실”(5항)에 주목해야 함을 제시한다. 이처럼 일관성을 강조하는 성서 해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가 제시한,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Traditio)”에 유의하고 실질적으로 일치해야 한다는 해석 원리에 의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이 주제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핵심 틀로서 제시되는 것은 창세기의 창조신학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과 닮은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그러기에 인간은 바로 하느님 자신의 작품이다. 성(性)의 보완성 안에서 인간은 창조주의 내적 일치를 반영하도록 부름 받고 있다.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내어 주는 상호 증여를 통한 생명의 전달로써 창조주와 협력하여 그 내적 일치를 놀라운 방법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위 인용문에는 창조신학의 핵심적 신학 개념들이 내포되어 있다. 먼저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 안에서(in the image of God) 남자와 여자로 창조됨’(창세 1,26-27)을 말하면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존재의 유비’(analogia entis) 관계가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이루는 상호관계성과 보완성은 하느님의 내적 일치를 반영한다고 함으로써, 성삼위(聖三位) 간의 ‘상호내재성’이 ‘관계적 존재’로서의 인간 안에 투영되어 있음을 신학적으로 함축해 제시한다. 그리고 인간의 사랑과 출산은 이러한 창조신학 안에서만 이해되어야 함을 마지막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인간의 죄성(罪性)에 관하여 설명한다.
“창세기 3장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이라는 인간에 관한 이 진리가 원죄에 덮여 흐려졌다는 것을 발견한다. 거기서, 인간이 하느님과 그리고 인간 서로와 이루는 일치의 계약적 특성에 대한 의식의 상실이 불가피하게 뒤따라 나온다. 인간의 육체는 ‘배우자의 표지’를 지니고 있지만, 지금은 죄 때문에 이것이 가려져 있다.”
이러한 원죄론적 전망의 원론적 제시에 이어서, 죄 때문에 그 고귀함을 상실한 인간의 육체성이란 맥락을 각론적으로 설명한다. 먼저, 구약 성경의 창세기 19장 1-11절에 나오는 소돔 남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동성애 관계를 반대하는 윤리적 판단이 이루어짐을 설명한다. 또한 레위기 18장 22절과 20장 13절에서는,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규정들을 기술하는 과정에서, 동성애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지적하며 경고한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나아가, 신약 성경의 바오로 서간에 나오는, 종말론적 맥락에서 동성애자들에 대한 윤리적 판단이 이루어지는 대목들(참조: 로마 1,18-32; 1코린 6,9; 1티모 1,10)을 열거하며 제시한다.
3. 자유의 문제
성소수자에게 있어 자유의 문제는 그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전제와 기준이 된다. 자유가 결여되어 있다면, 그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거나 윤리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러한 경우가 있다면, 이는 “사목적 배려와 대안이 필요”한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앙교리성 문헌은 인간의 근원적 자유에 관해 다시 상기시킨다.
“동성애 성향이 어떤 경우에는 고의적인 선택의 결과는 아니며, 동성애자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어 동성애 형태로 행동한다는 사실이 논란되어 오기도 하였다. … 본질적인 것은 동성애자들 또한 인간을 특정 짓고 인간에게 존엄성을 부여하는 근본 자유를 지니고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죄악으로부터의 모든 회개가 그러하듯이, 동성애 행위의 포기는 하느님의 해방시키는 은총에 대한 개인의 전적인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성소수자들 역시 인간 존엄성의 근거가 되는 근원적 자유를 행사할 수 있다는 원칙적 측면을 강조한다. 특히 ‘행위’와 관련해서는, 본인이 의지적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완전히 강압적인 상황으로만 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성소수자, 특히 동성애와 관련된 이슈 중 하나의 주요 쟁점이기도 하다. 신앙교리성은 이 논란을 충분히 의식하면서도, 원칙적인 윤리신학적 입장을 여기에서 제시하는 것이다. 물론, 그 행위의 개선에 있어서 인간적 노력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하느님의 은총에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은총론적 원리도 제시된다.
4. 사목적 배려
신앙교리성의 1986년 문헌 역시 다음과 같이 사목적 배려를 강조한다.
“동성애자들이 사람들의 언사나 행동에서 폭력적인 적의의 대상이 되어 왔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것은 개탄할 일이다. 어떠한 곳에서 일어나든, 그러한 처우는 교회의 목자들에게 단죄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한 대접은 건전한 사회의 근본 원리를 위협하는 일종의 타인 경시를 드러내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지닌 천부의 존엄성은 언행과 법률 안에서 언제나 존중되어야 한다.”
1986년 문헌의 이러한 언명은 1975년 문헌 입장과의 연속성 안에서 해석 가능하다. 즉, 이처럼 사목적 배려와 존중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동성애자들에게 저질러지는 범죄에 대한 당연한 반발이 곧 동성애 상황의 정당성에 대한 주장이 될 수는 없다”는 점 또한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여기서 언급된 “동성애자들에게 저질러지는 범죄”란 곧 동성애혐오(homophobia) 범죄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5. 1992년 문헌에의 적용
이 주제와 관련한 신앙교리성의 세 번째 공식 문헌은 1992년 7월 23일 발표된 「동성애자 차별 철폐 법안 관련 답변에 관한 일부 고찰」이다. 차별 철폐 법안과 관련해 미국 주교회의에 제공된 신앙교리성의 내부 문헌을 미국 언론이 보도한 일이 있었고, 이에 신앙교리성은 그 내용을 재검토하여 공개 발표한 것이 바로 이 문헌이다. 이 문헌은 기본적으로 1986년 문헌의 주요 내용을 요약해 원칙적으로 제시하면서도, 그 구체적 적용에 대하여 설명한다.
여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차별 철폐에 관해 논함에 있어 “‘성의 성향’(sexual orientation)은 인종이나 민족적 배경과 비교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없다”(10항), 즉 “한 인간의 ‘성적 성향’은 인종, 성별, 연령과 동일시 될 수 없다”(14항)고 밝힌다는 점이다.
사실, 1986년 문헌의 16항에서는,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그 성적 성향(sexual orientation)에 대한 환원적인 언급으로 적절하게 진술될 수는 없다”고 하면서, “교회는 인간을 하나의 ‘이성애자(heterosexual) 또는 동성애자(homosexual)’로서 구분하기를 거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이 원칙의 실제적 적용을 설명하는 1992년 문헌에서는, “한 인간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했을 때 이 사람의 권리 행사는 동성애자라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인권 침해의 견지에서 보호받아야 한다”(13항)고 강조하는 것이다.
Ⅳ. 「가톨릭 교회 교리서」(1992)의 종합
1992년 첫 프랑스어 판이 발표되고 1997년 라틴어 표준판이 발표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단순한 교리서가 아니라, 가톨릭교회의 신앙과 도덕에 관한 가르침을 총망라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도 이 주제에 관한 언명이 나온다. 오늘의 현실에서 “간과할 수 없는 숫자의 남녀가 깊이 뿌리박힌 동성애 성향을 보이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객관적으로 무질서인 이 성향은 그들 대부분에게는 시련이 되고 있음”(2358항)에 공감한다.
2357항에서는 동성애의 정의와 원인 등에 대하여 설명한 후, 이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제시한다. 즉, “동성애는 동성의 사람들에게 배타적이거나 더 강하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남자끼리나 여자끼리 갖는 관계”라고 정의한 후, “동성애는 기나긴 시대와 다양한 문화를 거치며 갖가지 형태를 띠어 왔다”고 말하면서도 그 “심리적 기원은 거의 밝혀져 있지 않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신앙교리성 문헌들에 의거해 “동성애 행위는 그 자체로 무질서”라고 정의하면서, 이는 자연법에도 어긋나는 것이라 하는데, 이는 “성행위를 생명 전달로부터 격리”시키기 때문이고, “그 행위들은 애정과 성의 진정한 상호 보완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한편으로, 사목적 배려와 존중을 강조한다. 즉, “그들을 존중하고 동정하며 친절하게 대하여 받아들여야 하고, 그들에게 어떤 부당한 차별의 기미라도 보여서는 안 된다”(2358항)고 천명한다. 마지막으로, “동성애자들은 정결을 지키도록 부름을 받고 있음”을 말하며, 그래서 “내적 자유를 가르치는 자제의 덕으로, 때로는 사심 없는 우정의 도움을 받아서, 또한 기도와 성사의 은총으로, 그들은 점차 그리고 단호하게 그리스도교적 완덕에 다가설 수 있고 또 다가서야 한다”(2359항)고 가르친다.
이러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내용은 성소수자, 특히 동성애자들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종합적이면서도 압축적으로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Ⅴ. 가톨릭 교육 맥락의 문헌들
1. 교황청 가톨릭교육성의 1983년 문헌
교황청 가톨릭교육성은 1983년 발표한 문헌 「인간적 사랑에 관한 교육 지침」을 통해서 이 주제를 교육적 맥락에서 다룬다. 사실, 이는 성장기의 청소년과 학생들에게 너무도 민감한 주제이다. 우선 신앙교리성의 1975년 문헌 8항을 인용해, 이 문제의 어려움과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후(101항 참조), 무엇보다도 먼저 그 발생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부모와 교사는 무엇보다도 동성애로 이끌어가는 요인이 생리적 또는 심리적 문제인지, 잘못된 교육이나 정상적인 성적 발달의 결여로 인한 결과인지, 그릇된 습성이나 잘못된 본보기에서 오는 것인지 또는 그 밖의 요인에서 오는 것인지 규명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처럼 신앙교리성 문헌에 의거한 분석 기준을 제시한 후에, 이제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애정의 결핍, 미성숙, 억압된 충동, 유혹, 사회적 소외와 그 밖의 욕구 불만, 저속한 옷차림, 퇴폐한 흥행물과 간행물의 이용 등 다양한 원인들”(102항)에 대하여 조사해볼 필요가 있음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러한 원인 조사에 이어서 부모와 교사가 이해심을 갖고서 여러 방법들을 강구하여 학생의 “통합적 성장을 촉진”(103항)해야 함을 강조한다.
2. 교황청 가정평의회의 1995년 문헌
교황청 가정평의회는 1995년 발표한 문헌 「인간의 성, 그 참모습과 참뜻: 가정교육을 위한 지침」104항을 통해서 이 주제에 관해 가정교육의 맥락에서 다루고 있다. 가장 주목할 것은, “동성애 행위가 습관으로 굳어버리지 않았을 때에는 많은 경우에 적절한 치료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밝힌 점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동기나 청소년기에 자녀들에게서 이러한 경향이나 이와 관계되는 행동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하면 유능한 전문가를 찾아가 가능한 모든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헌 해석의 관점에서 본다면, 앞서 이미 살펴본 신앙교리성 1975년 문헌 8항에서 언급된, “동성애의 경향이 잘못된 교육, 정상적인 성적 발달의 결여, 그릇된 습성, 잘못된 본보기나 그 밖의 유사한 원인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에 일시적이거나 적어도 불치가 아닌” 경우에 대한 대응책이자 해결책으로서 가톨릭교육성의 이러한 입장이 제시된 것이라 분석할 수 있다. 그리고 사목적 배려로서, “어떤 경우든 이런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존중과 품위와 세심함으로 대하여야 하며, 모든 형태의 부당한 차별을 삼가야 함”(104항)을 천명한다.
Ⅵ. 동성 결합 합법화에 대한 반대 문헌들
1. 교황청 가정평의회의 1994년 문헌
1990년대부터 ‘동성 결합’을 합법화하고자 하는 사회적 흐름과 움직임이 강화되는 것에 대해서, 가톨릭교회는 일관된 반대 입장을 제시한다. 혼인과 가정의 문제를 다루는 교황청 주무 부서인 가정평의회가 가장 먼저 나섰는데, 1994년 2월 8일에 이루어진 유럽의회 결의안에 대하여, 3월 25일자로 「동성애 문제에 관하여 교황청 가정평의회 의장이 유럽 주교회의 의장들에게 보내는 서한」을 발표하였다.
가정평의회는 “그 결의안이 동성애자들의 결합을 가정 ‘제도’로 인정하고, 자녀 입양권을 허용”(2항)하고자 하는 것임을 우려하며, 이는 “가정의 자연적 토대인 혼인을 부정”(1항)하는 것이라 비판하고, 오직 “혼인에 바탕을 둔 안정된 가정만이 조화롭고 긍정적인 발전을 보장할 수 있다”(2항)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새로운 가정으로 인정받으려 하는 동성의 두 사람을 논하면서 차별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3항)하다고 설명한다.
2. 교황청 가정평의회의 2000년 문헌
이 주제에 관한 교황청 가정평의회의 공식 언급은 2000년 발표된 문헌 「가정, 혼인, ‘사실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무엇보다도 “동성애 관계의 제도화가 사회에 미칠 심각한 영향”(23항)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 가톨릭교회가 왜 동성 간 결합의 합법화에 반대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신학적으로 설명한다.
“동성 결합에 ‘혼인’의 지위를 부여하라는 요구는 매우 부조리한 것임을 드러낸다. 그러한 요구에 반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인간의 본성 자체에 새겨 놓으신 계획에 따라 생명을 전달함으로써 열매를 맺는 결합 관계가 객관적으로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장애는, 신체적 생물학적 차원과 특히 심리 차원에서 창조주께서 뜻하신 남녀의 상호 보완성을 위한 조건들을 갖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인용문은 구약 성경 창세기를 통해 제시된 창조신학에 의거하여, 동성 결합의 합법화 움직임에 반대하는 것이다. 문헌 해석의 관점에서 본다면, 앞서 이미 살펴본 바 있는, 신앙교리성의 1986년 문헌 6항에서 제시된 성서 해석 내용을 이제 현실의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라 분석할 수 있다.
그리고 “동성애 관계를 사실혼과 같이 부부로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윤리와 법적 차원에서 중대한 문제를 가져오게 될 것”이며, “동성애자들 사이의 ‘사실혼’은 생명으로 열려 있는 상호 증여를 통해서 남녀 사이의 사랑과 생명의 친교가 되어야 할 혼인에 대한 통탄스러운 왜곡”(23항)이라고 지적한다.
3.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2003년 문헌
신앙교리성은 2003년 「동성애자 결합의 합법화 제안에 관한 고찰」이란 문헌을 발표한다. 이미 가정평의회가 1994년과 2000년 문헌을 통해 이 주제에 대해 입장을 표명했는데, 이제 신앙교리성이 보다 체계적인 관점에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다.
먼저, 신학적, 철학적, 교육학적 관점에서의 반대 의견을 표명한다. 즉, “동성애자들의 결합을 어떤 식으로든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과 유사하거나 조금이라도 비슷하다고 여길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음”(4항)을 말한다. “혼인은 신성하지만, 동성애 행위는 자연 도덕법에 어긋나기”(4항) 때문이다. 이러한 결합에는 “이성의 차원에서 법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되는, 혼인과 가정이 지닌 생물학적이고 인간학적인 요소들이 완전히 결여”(7항)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의 결합에는 성의 상호 보완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보살핌에 맡겨지게 될 어린이들은 부성 또는 모성을 경험할 수가 없어서 정상적인 성장에 방해를 받는다”(7항)는 점 또한 지적한다.
이어서 법적이고 사회적 관점에서의 문제제기가 이루어진다. 즉, “동성애자들의 결합이 법적으로 인정되었거나 혼인에 해당하는 법적인 지위와 권리를 부여받은 경우에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반대”(5항)해야 함을 천명한다. “동성애자 결합의 합법화는 일부 기본적인 도덕 가치들을 흐리게 하며 혼인 제도의 가치를 떨어뜨리게 될 것”(6항)임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만일 “법적인 관점에서 남자와 여자의 혼인이 단지 가능한 혼인 형태들 가운데 하나로만 여겨진다면 혼인의 개념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고, 이는 공동선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것”(8항)이라는 우려를 표명한다.
마지막으로, 이와 관련한 가톨릭 신자들의 의무를 천명한다. 즉,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동성애자 결합의 합법화를 반대할 의무가 있지만, 가톨릭 정치인들은 특별히 더욱 그러한 의무가 있다”(10항)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사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재위 1978-2005)은 1995년 회칙 「생명의 복음」을 통해, 정당성이 없는 행위들을 지지하는 법들에 대해서는, “그러한 법들을 따라야 할 양심상의 의무는 없음”을 밝히면서, “오히려 양심적으로 그러한 법들에 반대하여야 할 중대하고도 명백한 의무가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신앙교리성의 2003년 문헌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존중이 결코 동성애 행위에 대한 인정이나 동성애자 결합의 합법화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11항)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4.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의 「간추린 사회 교리」(2004)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가 2004년 출간한 「간추린 사회 교리」 228항에서도 이 주제에 대하여 언급한다. 동성 결합의 합법적 인정에 대한 요구 문제가 점점 더 공론화해 가고 있음을 전제하면서, 이에 대한 적절한 응답이 필요함을 밝힌다.
가장 기본적으로, “인간이 통합적인 일치와 정신물리학적인 상호 완성을 통하여 완전함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성(性)이 다른 두 사람의 결합에서만 가능”하다는 원칙을 내세우면서, 그동안 이와 관련해 발표된 교회 문헌들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요약해 제시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동성애자들의 인간 존엄을 온전히 존중”하여야 하지만, “이러한 존중의 의무가 도덕률에 위배되는 행위의 합법화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며, 동성 간의 혼인과 그것이 가정과 동등하게 여겨질 권리의 인정을 정당화하는 것은 더더욱 아님”을 매우 분명히 밝히고 있다.
Ⅶ. 교황청 가톨릭교육성의 2005년 문헌
교황청 가톨릭교육성은 2005년 11월 4일자로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신학교 입학과 성품 허가와 관련하여 이들의 성소를 식별하는 기준에 관한 훈령」을 발표하였다. 여기서는 이 주제를 신학교 입학 및 성품 허가와 관련해 다룬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이전 문헌들에서 일관적으로 제시된 바와 같이, ‘경향’과 ‘행위’를 구분하는 것인데, 이는 매우 중요한 식별 기준이 된다. 그래서 2항에서는 “실제로 동성애 행위를 하는 사람들, 뿌리 깊은 동성애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 또는 이른바 ‘게이 문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신학교나 성품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하게 선언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다.
하지만, “일시적인 문제로 드러나는 것일 뿐인 동성애 경향, 예를 들어 아직 고정되지 않은 청소년의 동성애 성향을 다루는 경우”는 앞서와 다르며, “그러한 성향은 적어도 부제 수품 삼년 전에는 완전히 극복되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그리고 3항에서는 신학교 입학 및 성품 후보 자의 적격성에 대한 식별 문제를 다룬다.
Ⅷ. 프란치스코 교황의 2016년과 2019년 권고
1. 2016년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6년 3월 9일자로 발표한 권고 「사랑의 기쁨」에서 이 주제에 관한 입장을 밝히는데, 앞서 살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2358항과 신앙교리성의 2003년 문헌 「동성애자 결합의 합법화 제안에 관한 고찰」4항을 인용해 견해를 피력한다.
첫째, “모든 이가 자신의 성적 성향에 관계없이 그 존엄을 존중받고 사려 깊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따라서 “어떤 부당한 차별의 기미, 특히 모든 형태의 공격과 폭력으로 그들을 대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피하여야 한다는 점도 강조”(250항)한다. 이는 교회의 일관된 사목적 배려와 존중을 거듭 천명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둘째, “이와 같은 가정과 관련하여 그들을 존중하는 동반을 하여 동성애 성향을 보이는 이들이 자신의 삶에서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250항)고 강조한다. 이는 가정평의회의 1995년 문헌 104항의 내용을 요약해 다시 천명한 것이라 분석할 수 있다.
셋째, “동성애자들의 결합을 어떤 식으로든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과 유사하거나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여길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251항)고 설명한다. 이는 앞서 살펴본 동성 결합 합법화에 반대하는 여러 문헌들에서 이미 고찰된 바를 다시 요약한 것이다.
넷째, “이러한 사안에 대하여 지역 교회가 압력을 받거나 국제기구들이 동성애자들의 ‘혼인’을 제도화하는 법률의 제정을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경제 원조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은 용납될 수 없음”(251항)을 분명히 밝힌다. 이는 동성 결합 합법화를 옹호하며 더욱 거세어지는 국제사회 흐름에 대하여 가톨릭교회의 분명한 입장을 천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 2019년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9년 3월 25일 발표한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81항에서 간략하게 이 주제에 대하여 언급한다. 먼저,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삶과 정체성 확립 과정에서 신체와 성(sexuality)이 지니는 본질적 중요성을 잘 알고 있음”을 언급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남녀 성 정체성에 따른 차별, 남성과 여성의 호혜적 관계, 동성애 문제들의 논의를 향한 분명한 바람도 표명”함을 말한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교회가 그저 “심판과 단죄의 자리”로만 여겨지지 않도록, 그들과 함께 이 주제들에 관한 열린 대화에 임해야 함이 여기에서 암시되는 것이다.
Ⅸ. 젠더 이론에 대한 문헌들
1.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사랑의 기쁨」(2016)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사랑의 기쁨」(2016) 56항에서는 최근의 사회적 주요 이슈들 중 하나를 반영한 언명이 나타난다. 즉, 오늘날 등장한 “다양한 형태의 젠더 이데올로기”(the various forms of an ideology of gender)에 대해 언급한 후에, 다음과 같은 비판적 평가가 이루어진다.
“젠더 이데올로기는 남성과 여성의 본질적 차이와 상호성을 부정합니다. 그리고 성에 따른 차이가 없는 사회를 꿈꾸며 가정의 인간학적 기초를 없애는 것입니다. 이러한 젠더 이데올로기는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근본적으로 무시하는 차원의 인간 정체성과 정서적 친밀을 조장하는 교육 계획과 입법을 야기합니다. 그 결과로 인간의 정체성은 개인의 선택이 되고, 또한 시간이 흐르면 바꿀 수 있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교황 문헌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젠더’에 관한 언급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 인용문은 매우 중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 문화적 성 역할(gender)은 구분되지만 별개의 것이 아니라 는 것을 강조”(56항)해야 함을 밝힌다. 나아가, “일부 젠더 이데올로기가 스스로를 절대적 이념으로 내세우며 심지어는 자녀 교육까지도 좌우하려는 것”(56항)에 대해서 우려를 표명한다.
2. 교황청 가톨릭교육성의 2019년 문헌
교황청 가톨릭교육성이 2019년 2월 2일자로 발표한 문헌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교육에서 젠더 문제에 관한 대화의 길을 향하여」는 교육에 있어 ‘젠더’의 문제를 다루며 성소수자에 대하여 언급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문헌이다.
여기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사랑의 기쁨」 56항에서 언급된 ‘젠더’에 관한 주제를 더욱 심화시켜 제시하는데, 먼저 ‘젠더 이데올로기’와 ‘젠더에 관한 연구’를 구분해 설명한다. 즉, “교육에서 대화를 바탕으로 젠더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다면, 한편으로는 ‘젠더 이데올로기’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문학에서 다루는 ‘젠더’에 관한 다양한 연구들 사이의 차이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6항)함을 강조한다. 그래서 “다양한 문화에서 남녀의 성별 차이가 삶으로 나타나는 방식을 더욱 깊이 이해하려 시도하는 젠더에 관한 연구”와 관련해서는, “경청, 이성적 사고, 제안에 열려 있어야 한다”(6항)고 제안한다.
1) 젠더 이론의 형성 과정
이 문헌은 젠더 이론의 형성 과정에 대해 설명한다. 즉, “20세기 중반 즈음에, 인격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조건들의 역할을 거듭 강조한 여러 연구들이 계속 발표”되었는데, 이는 “인간의 성에도 적용”되었다. 그리하여 “성 정체성이 자연적으로 또는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사실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주장”(8항)이 대두되었고, 여기에서 “성별이나 출산은 가정의 형성과 무관한 것”(9항)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에 이르러 젠더 이론은 급격한 확장을 이루게 된다.
“젠더 이론은 남녀관계의 상호성과 보완성 그리고 성의 출산 목적을 고려하지 않고, 개인이 자신의 성적 성향을 결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더 나아가,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 문화적 성’(gender)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분리하고 ‘젠더’를 더욱 우선시하는 이론을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성에 따른 차이가 없는 사회를 지향하는 인류 진화의 중요한 단계로 여겨졌다.”
사실, ‘생물학적 성’(sex)은 “어떠한 사람이 본래 여성과 남성의 이원성에서 나온 두 가지 생물학적 분류 가운데에서 어디에 속하는지를 규정”하는데 비해서, ‘사회 문화적 성’(gender)은 “문화마다 성적 차이가 삶으로 나타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도록 두 용어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분리시켜버리는 데에 큰 문제가 있다고 이 문헌은 지적한다(11항). 그리고 이에 근거해, 다양한 ‘성적 성향’(sexual orientation)의 구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적 성향’은 더 이상 남녀의 성적 차이로 규정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는데, 완전히 자율적인 존재라고 여겨지는 개인이 이를 독단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젠더 개념 자체가 개개인의 주관적인 사고방식에 달려 있다고 본다. 각 개인은 자신의 생물학적 성과 이에 따라 다른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과는 다른 젠더를 선택할 수 있다.”
이처럼 이른바 트랜스젠더리즘(transgenderism)을 표방하는 “젠더 이론의 명제들은 극도로 유동적이고 변화무쌍하며 불안정한 성적 차원들을 가리키는 ‘퀴어’(Queer) 개념으로 수렴”(12항)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는 “자신의 젠더를 선택할 권리와 새로운 형태의 다양한 결합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달라는 요청”으로 연결된다. 즉, “개인이 자신의 입장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는 간섭을 최소화하여 관련된 소수자들이 사회에서 부정적 차별로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심지어 물질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바람”(14항)이 제시되며, 이것이 정치적, 법적 요구로까지 드러나 반영되기도 하는 것이다.
2) 젠더 연구들과의 합의점
이 문헌은 “젠더 연구들 안에서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함께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는 일부 입장들이 발견”됨을 인정한다.
첫째, “이러한 분야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들은 모든 부당한 차별의 표현들을 타파하려는 훌륭한 열망을 공유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15항)고 설명한다.
둘째, 또 하나의 가능한 합의점은 “개성과 다름을 지닌 ‘모든 사람을 존중’하도록 어린이와 젊은이를 교육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여기에 는 정당하게 드러나는 모든 인간의 특성을 존중하고 수용할 수 있는 능동적이고 책임감 있는 시민의식을 기르는 교육이 포함”(16항)된다고 설명한다.
셋째, “젠더에 관한 성찰에서 나타난 인간학적 이해는 ‘여성성의 가치’를 중심으로 더욱 긍정적으로 발전”하였는데, “예를 들어, 여성이 지닌 ‘타인을 위한 능력’은 상황의 전개를 더욱 현실적이고 성숙된 시각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준다”(17항)고 강조한다.
3) 젠더 이론에 대한 비판
하지만 이 문헌은 젠더 이론들, 특히 젠더 이데올로기의 문제점들을 제시한다.
첫째, “젠더 이론들, 특히 가장 급진적인 형태의 젠더 이론들은 탈자연화(denaturalization)의 점진적 과정, 곧 ‘본성’에서 멀어져 전적으로 인간 주체의 감정에 따른 결정을 선택하는 경향에 대하여 이야기 함”을 지적한다. 사실, “사물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성 정체성과 가정에 대한 관점은 포스트모던 문화 측면의 특징인 ‘유동성’과 ‘가변성’에 따르게 되는 것”(19항)이라고 비판한다.
둘째, 이 젠더 이론들의 기본 전제는, “육체를 인간 의지에서 분리한 이분법적 인간학” 및 “상대주의”(20항)라 비판할 수 있다. 사실, “다양한 정체성들을 옹호하는 주장은 흔히 여러 다른 정체성들을 서로 완전히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제시하지만 실제로는 각 정체성의 의미를 부정”(21항)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이러한 젠더 이데올로기는, “남녀의 실질적인 ‘생물학적 다름’과는 근본적으로 단절된 개인의 정체성과 정서적 친밀함을 부추기는 교육 프로그램과 법적 추세로 이어진다”(22항)는 점에서 사회적 문제가 된다.
넷째, 최근의 일부 극단적인 성소수자 이론에 대한 비판을 제시한다. 즉, “이른바 ‘중성’(gender neuter) 또는 ‘제3의 성’(third gender)이라는 허구적 구조가 ‘성 정체성 확립 과정’을 더욱 방해”함을 지적한다. “남녀를 구성하는 성적 차이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들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모호함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하면서, “이러한 시도들은 결국 이른바 ‘전통적 도식들’에 반대하는 ‘도발적’ 표현만 될 뿐이고, 실제로 성이 불명확한 상황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무시하는 처사”(25항)임을 지적한다. 결국, “민감한 젠더 문제들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접근 방식은, 다양성 존중에 대한 표명은 되겠지만, 실제로는 다름 그 자체를 고착화시켜 버리고 결국 고립과 단절을 야기할 위험”(52항)이 있음을 비판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문헌은 참다운 그리스도교 인간학의 정립 중요성을 제안한다. 이에 근거하여, “가정은, 육체적 심리적 정신적으로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모든 차원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전인적 인간학’(an integral anthropology)에 바탕을 두고 자녀 교육을 할”(55항)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3.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의 「교리교육 지침」(2020)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가 2020년 6월 25일자로 발표한 새로운 「교리교육 지침」역시 ‘젠더’에 관하여 언급한다. 이 문헌은 오늘날 ‘젠더’와 관련해 확산되는 흐름 속에서,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라는 언명이 논쟁이 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즉, 성 정체성은 인간이 하느님께로부터 부여받아 그 의미를 채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고 간주됨을 염려한다. 물론, 교회는 각 개인들이 살아온 상황의 복잡성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그들을 동반하고자 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성(性)은 단지 육체적으로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적 실재이며, 인격체의 책임에 맡겨진 하나의 가치임을 이 문헌은 강조한다.
X. 결론: 진정한 인격적 실현을 향하여
성소수자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고찰함에 있어, 현대 교도권의 문헌 거의 대부분이 ‘동성애’나 ‘동성애자’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지만, 최근 문헌에서는 ‘젠더’ 개념까지도 다루며 그 폭을 넓혀가고 있다. 신앙교리성의 1975년과 1986년 문헌은 이와 관련한 핵심 관점을 제시하며, 여기에서 천명된 내용은 이후의 교도권 문헌들에서 계속 인용되어 확대, 보완되었다. 교도권 문헌은 동성애적 관계를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목적이 결여된 것으로 보면서, 그 경향성을 객관적 무질서로 규정하고, 그 행위는 결코 인가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이러한 성향의 사람들을 존중으로 대하며 부당한 차별이 없어야 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목적 배려와 존중이 동성 결합 합법화에 대한 인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오늘날 젠더 연구의 수용 가능한 부분이 있음을 밝히면서도, 남성과 여성의 본질적 차이 및 상호성을 부정하는 극단적 성소수자 이론이나 ‘젠더 이데올로기’ 주장은 수용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사실, 교회의 이러한 기본 입장과 교리가 시대나 상황의 변화에 따라 바뀔 수는 없다. 남자와 여자의 성적 구별 및 상호성은 생물학적 차원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 차원에도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존엄성 및 상호성을 지니고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인격적 차원에 속한다. 따라서 인간의 성적 정체성은 한 개인의 선택만으로 결정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참다운 인격성이란 ‘관계적 인격성’을 의미하며, 이는 하느님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남성-여성-하느님’의 ‘삼원적인’ 수직 차원의 … 관계 안에서 성적 차이는 개인 정체성의 구성요소로 여겨진다”는 것은 그리스도교 인간학의 기본 가르침에 속한다. 이러한 관계성 안에서의 친교, 즉 “남자와 여자 사이에 맺어지는 … 인격적 친교는 자기중심적인 본능의 충동에 의해서 성립되지 않고 자기이탈적인 몰아적 사랑에 의해서만 제대로 성립”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처럼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자유롭고 책임있게 맺어지는 인격적 친교 속에서 하느님의 모상으로서의 인간 존재가 실현”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진정한 인격적 실현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한 것처럼, 사목적 배려와 존중을 통해 시대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 및 성소수자들과의 열린 대화를 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고 필요한 일이다. 그들과의 대화에서, “교회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있는 이들에 대한 태도가 단죄와 배제보다는 연민과 수용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본 논문에서 다룬 주제와 관련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 7월 28일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언명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동성애자가 있는데, 그가 주님을 찾고, 선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내가 뭐라고 그를 심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젠더 이론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비판하면서도 합의점을 찾고자 대화를 시도한 노력은 교회의 사목적 배려로서 매우 시의성 있는 작업이며, 나아가 교회의 ‘본질적인 선교 임무’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더욱 강조되며, 성적 성향에 따른 차별 금지가 국제적 기준으로 강화되어진 상태에서, 나아가 현대의 젠더 이론은 매우 빠르게 변화되고 더욱 복잡해지는 현실에서, 어떻게 교회의 교리 수호와 사목적이며 선교적인 대화 사이의 조화로운 균형점을 찾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가톨릭교회가 마주한 큰 도전이자 과제이다.
참 고 문 헌
「성경」,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9.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헌장 「인류의 빛」, 1964., 계시헌장 「하느님의 말씀」, 1965.,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 1965., 선교교령 「만민에게」, 1965.
「가톨릭 교회 교리서」, 1992.
교황청 가정평의회, 「동성애 문제에 관하여 교황청 가정평의회 의장이 유럽 주교회의 의장들에게 보내는 서한」, 1994., 「인간의 성, 그 참모습과 참뜻: 가정교육을 위한지침」, 1995., 「가정, 혼인, ‘사실혼’」, 2000., 「가정과 출산」, 2006.
교황청 가톨릭교육성, 「인간적 사랑에 관한 교육 지침」, 1983.,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신학교 입학과 성품 허가와 관련하여 이들의 성소를 식별하는 기준에 관한 훈령」, 2005.,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교육에서 젠더 문제에 관한 대화의 길을 향하여」, 2019.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 「교리교육 지침」, 2020.
교황청 신앙교리성, 「성 윤리상의 특정 문제에 관한 선언」, 1975., 「동성애자 사목에 관하여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 1986., 「동성애자 차별 철폐 법안 관련 답변에 관한 일부 고찰」, 1992., 「동성애자 결합의 합법화 제안에 관한 고찰」,2003.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간추린 사회 교리」, 2004.
바오로 6세, 회칙 「주님의 교회」, 1964.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 1990., 회칙 「생명의 복음」, 1995.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2016.,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2019.
길원평ㆍ도명술ㆍ이세일ㆍ이명진ㆍ임완기ㆍ정병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