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낙태죄 개정 입법 부작위에 따른 법적 공백에 대한 의견
수신: 대한민국 국회 박병석 국회의장
참조: 국회사무처
최근 국회에서 형법상 낙태죄 개정 입법이 연내에 어렵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습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새해부터 아무런 대안 없이 자기 낙태죄 조항과 의사 낙태죄 조항이 그 효력을 잃게 됨으로써, 임신의 모든 과정에 걸쳐서 태아의 생명을 전혀 보호할 수 없는 법적 공백이 생기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아래와 같은 의견과 함께 입법부의 책임 이행을 촉구드립니다.
1.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11일에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금년 말까지 개선 입법을 만들도록 한 목적 중 하나는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되는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명시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현재 국회는 헌법재판소가 정한 입법 시한을 넘겨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인 태아의 생명을 전혀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입법부의 명백한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2.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서 태아의 생명보호는 “공익”으로 인정됩니다. 헌법재판소는 태아의 생명권이나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를 부정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국회는 입법부의 역할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는 “공익”을 저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됩니다.
3. 국회의 이와 같은 입법 부작위는 헌법에도 위배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이전에 있었던 다수의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이미 아래와 같이 명문화된 바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며, 생명권은 비록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다 하더라도 인간의 생존본능과 존재 목적에 바탕을 둔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로서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기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헌재 1996. 11. 28. 95헌바1 참조)이라는 점은 논란의 여지 없이 자명하다.
모든 인간은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형성 중의 생명인 태아에게도 생명에 대한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 태아가 비록 그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모(母)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그 자체로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아도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국가는 헌법 제10조 제2문에 따라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헌재 2008. 7.31. 2004헌바81; 헌재 2008. 7. 31. 2004헌마1010등; 헌재 2010. 5. 27. 2005헌마346; 헌재 2012. 8. 23. 2010헌바402 참조).”
4. 이에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국회의 현재와 같은 직무유기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국가의 중요한 책무에 있어서 입법부의 올바른 역할을 이행해 주실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하는 바입니다.
국민의 행복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의장님과 모든 국회 의원들이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강건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20. 12.28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 국회의 낙태죄 개정 입법 부작위에 따른 법적 공백에 대한 의견서.pdf (134.4KB)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