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문헌

<교황청 신앙교리성> 동성애자 사목에 관하여 -가톨릭교회의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1986.10.1)

박정우 | 2020.09.17 12:00 | 조회 50

동성애자 사목에 관하여

-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 -


교황청 신앙교리성

 

 

1. 동성애 문제와 동성애 행위에 대한 윤리적 평가는 점차 공공연한 논란거리가 되어왔으며, 심지어는 가톨릭계에서도 그렇게 되었다. 이러한 논란은 흔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과 모순되는 논리와 주장을 펴고 있기 때문에, 사목 직무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매우 마땅한 일이다. 본성성은, 이 문제의 심각성과 중요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동성애자 사목에 관한 이 서한을 가톨릭 교회의 모든 주교들에게 보내는 바이다.
 
2. 여기서 이 복합적인 문제의 철저한 연구를 시도할 수는 없으므로, 우리는 당연히 가톨릭 윤리관의 독특한 맥락 안에서 우리의 반성을 집중시킬 것이다. 자연과학의 더욱 확실한 발견으로 지지를 받고 있는 가톨릭의 윤리적 전망은 그 자체의 정당하고도 고유한 방법론과 연구 분야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 윤리관은 신앙으로 비추어진 인간 이성에 그 토대를 두고 있으며,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열망에서 의식적으로 그 동기를 부여받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과학적 발견으로 배우고자 할 뿐만 아니라 과학의 지평을 초월하려는 자세를 갖추고 있으며, 자신의 세계적인 전망은, 하느님께 창조되어 은총으로서 영원한 생명의 상속자가 된, 인간의 풍요로운 정신적 육체적 차원의 실재에 더욱더 합당한 것이라고 확신하다.
 
바로 이러한 맥락 안에서, 사회와 교회 생활에 있어서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복합적인 동성애 현상에 교회의 사목적 관심이 모아진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의 사목자들에게 주의깊은 연구와 적극적인 관심 그리고 신학적으로 균형이 잡힌 솔직한 상담을 요구하고 있다.
 
3. 본 성이 1975년 12월 29일에 발표한 "성윤리의 특정 문제에 관한 선언"은 이 문제를 명확하게 언급하였다. 그 문헌은 동성애 상황을 규명해야 하는 임무를 역설하면서, 동성애 행위에 유죄성은 오직 현명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성성은 동성애 상황 내지 경향과 개별적 동성애 행위 사이의 구별에 주목하였다. 이는 모두 본질적이고도 불가분한 목적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근본적으로 잘못된"것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고 기술하였다(8항 s4참조).
 
그러나, 同 선언의 발표에 뒤이은 논란에서는 동성애 상황 자체에 대하여 지나 칠 정도로 부드러운 해석이 대두되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이를 중립적이라거나 선(善)이라고 부리기까지 하였다. 동성애자의 특수한 성향이 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본질적인 윤리악으로 기울어지는 다소 강력한 경향이다. 따라서 그 성향자체는 객관적인 무질서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목상 특별한 관심과 배려가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져, 그들로 하여금 동성애 행위로써 그러게 살아가는 그것이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선택이라고 믿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동성애는 용납될 수 없다.
 
4. 진정한 사목적 배려의 근본 차원은 교회의 가르침에 관한 혼돈의 원인 규명이다. 여러 가지로 주장되고 있는 새로운 성서 해석이 그 원인의 하나이다. 즉, 성서에는 동성애 문제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거나, 성서가 다소 암시적으로 이를 인정하고 있다든가, 혹은 성성의 윤리적 권고는 모두 문화에 예속된 것이므로 현대 생활에는 더 이상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견해들은 중대한 오류이며, 여기서 특별한 관심을 보여야 할 문제이다.
 
5. 성서의 문체가 여러 시대에서 다양하고 수많은 형태의 사상과 표현으로 쓰여져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계시헌장, 12항 참조). 교회는 오늘날 수많은 면에서 옛날과는 다른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이를테면, 신약성서가 쓰여졌던 세계는 이미 히브리인들의 성서가 쓰여지거나 편찬되던 상황과는 크게 다른 것이었다.
 
이토록 현저한 다양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서 그 자체에 동성애 행위의 윤리문제에 관한 분명한 일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여야 한다. 이 문제에 관한 교회의 교의는 간편한 신학적 논증을 위한 고립된 몇 구절이 아니라 성서의 항구한 증언의 견고한 토대 위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오늘날의 신앙 공동체는, 옛날 성서가 쓰여졌던 유다 공동체와 그리스도인 공동체와는 단절 없는 지속성 안에서, 진리의 영에 의하여 그리고 바로 그분의 말씀인 그 동일한 성서에 의하여 끊임없이 육성되고 있다. 이렇듯이 교회의 살아있는 전통과 상치되는 방법으로 성서를 해석한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성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깨달아야 한다. 올바로 말하자면, 성서의 해석은 그 전통과 실질적으로 일치하여야 한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계시헌장10항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전과 성서와 교회의 교도권은 하느님의 가장 현명하신 계획에 의하여, 어는 하나가 없으면 다른 것이 성립될 수 없고,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또한 각각 고유한 방법으로 한 성령의 작용아래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기여하도록 상호간에 연관되어 있고 결합되어 있음은 명백한 일이다." 그러한 정신으로, 우리는 여기서 성서의 가르침을 간략하게 개괄하고자 한다.
 
6. 동성애에 관한 이 전체적인 토론의 이해를 위한 기본 구도를 제공해 주는 것은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신학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한 지혜와 사랑으로써 모든 실재가 당신 선(善)의 반영으로서 실재하게 하신다. 그러기에 인간은 바로 하느님 자신의 작품이다. 성(性)의 보안성 안에서, 인간은 창조주의 내적 일치를 반영하도록 부름받고 있다.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상호 증여에 의한 생명의 전달로써 창조주와 협력하여 그 내적 일치를 놀라운 방법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창세기 3장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이라는 인간에 관한 이 진리가 원죄에 덮여 흐려졌다는 것을 발견한다. 거기서, 인간이 하느님과 그리고 인간 서로와 이루는 일치의 계약적 특성에 대한 의식의 상실이 불가피하게 뒤따라 나온다. 인간의 육체는 "배우자의 표지"를 지니고 있지만, 지금은 죄로 인한 타락은 계속되고 있다. 거기서는 분명히 동성애 관계를 배척하는 윤리적 판단이 내려졌다고 할 수 있다. 레위기 18장과 22절과 20장 13절에서는,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규정들을 기술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동성애를 하는 자들을 하느님의 백성으로부터 제외시켰다.
 
이러한 신정법 제시의 배경에 반하여, 사도 바오로는 종말론적인 전망을 펼치고 있다. 고린토 전서 6장 9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 동일한 교리를 제시하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동성애를 하는 자들을 열거하는 것이다.
 
로마서 1장 18-32절에서는, 조상들의 윤리적 전통을 고수하며, 당시 그리스도인들과 이교 사회가 대립하고 있는 새로운 상황에서 사도 바오로는 인류를 집어삼킨 어두운 타락상의 한 예로서 동성애 행위를 들고 있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원초적 조화를 잃을 때, 우상숭배의 극심한 타락은 온갖 형태의 도덕적 문란으로 이어져왔다. 사도 바오로는 동성애 관계를 이러한 부조화의 가장 분명한 예로 불 수 밖에 없었다. 끝으로, 디모테오 전서 1장은 성서적 입장을 완전히 견지하여, 거짓 교설을 퍼뜨리는 자들을 뽑아내 경고하며, 10절에서는 동성애 행위를 하는 자들을 죄인들이라고 지칭한다.
 
7.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에 성사생활을 부여하신 주님께 순종하는 교회는 혼인성사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고 생명을 주는 일치를 이루도록 하신 하느님의 계획을 경축한다. 성적 기능의 사용은 오로지 혼인관계 안에서만 윤리적으로 선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동성애 행위를 하는 사람은 부도덕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성행위를 위해 동성을 선택한다는 것은 성에 관한 창조주의 계획이 지닌 목적만이 아니라 그 풍요한 상징과 의미를 무효화시키는 것이다. 동성애는 생명을 전달하는 보완적 결합이 아니다. 그러기에 동성애는 또한 복음이 그리스도인 생활의 본질이라고 일컫는 자기 증여의 생활에 대한 부르심을 훼파(毁破)하는 것이다. 이는 동성애자들이 흔히 관대하지 못한다거나 헌신적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동성애 행위를 할 때에 그들은 근본적으로 자아 탐닉이라는 도착된 성 경향을 그 자신들 안에서 확인한다는 것이다. 모든 윤리적 무질서가 그러하듯이, 동성애는 하느님의 창조적 지혜에 반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성취와 행복을 가로막는다. 교회는 동성애에 관한 그릇된 견해들을 배척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올바르게 이해되는 인간의 존엄성과 그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수호하고 있다.
 
8. 그러므로 교회의 가르침은 오늘날 성서적 전망과 교회 자신의 일관된 전통과 더불어 유기적인 지속성을 갖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가 수많은 분야에서 극히 새로운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신앙의 표지를 지니고" 우리보다 앞서 살다 간 세대들과 우리들을 합치시키는 심오하고도 영구한 결속을 깨닫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점차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조차, 동성애 상황이 무질서가 아닌 것으로 인정하라거나 동성애 행위를 묵인하라는 대단한 압력을 교회에 가해오고 있다. 교회 안에서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자들은 흔히 교회 밖에서 그와 유사한 견해를 가진 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 후자의 집단들은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완전하게 드러나는 인간에 관한 진리를 거스르는 견해를 따르고 있다. 전적으로 의식하지는 않더라도, 그들은 인간의 초월적 본성은 물론 모든 개인의 초자연적 소명을 부정하는 유물론적 이념을 반영하고 있다.
 
교회의 사목자들은 자신들이 돌보는 동성애자들이 교회의 가르침을 근본적으로 거스르는 이러한 견해에 의하여 오도되지 않도록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그 위험은 대단한 것이며, 많은 사람들은 교회의 입장에 혼란을 일으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 혼란을 이용하려 하고 있다.
 
9. 여러 가지 이론과 규모의 압력 단체 형태를 취하고 있는 교회내의 운동은 가톨릭 신자 중에 있는 동성애자 모두를 대표한다는 인상을 주려고 시도하고 있다.
 
사실상 그 구성원은 교회의 가르침을 무시하거나 어느 정도 이를 훼손시키려는 자들로 제한되고 있다. 이는 가톨릭이라는 이름 아래 동성애 행위를 포기할 의사가 없는 자들을 규합하려는 것이다. 그들이 늘상 사용하는 수법의 하나는 동성애자들과 그들의 행동 및 생활 방식에 관한 유보 조치 또는 어떤 비판이나 모든 비난들은 단순히 모습만 다른 불의한 차별이라고 저항하는 것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일반 시민법의 견해가 바뀐다는 생각과 더불어 흔히 사목자들의 선의의 지지를 얻어내어 교회를 기만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동성애가 전적으로 선한 것은 아니라 해도 적어도 전혀 무해하다는 이들 압력 단체들의 개념을 따르게 하려고 그런 일을 자행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동성애의 행실이 많은 국민들의 생활과 복지를 심각하게 위협할 때에도, 그 옹호자들은 거기에 내포된 위험의 크기를 숙고해 보는 것을 거부하고 방해한다.
 
교회는 결코 그토록 무디지 않다. 교회의 명확한 입장이 한 시대의 경향이나 시민법의 압력으로 가담하지 않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그 기만적인 선전에 현혹당하는 사람들을 참으로 염려하고 있다. 동성애 행위가 부부애의 성적 표현과 동등하다거나 용납될 수 있는 것이라는 견해가 가정의 본질과 그 권리에 대한 사회의 인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가정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도 교회는 잘 알고 있다.
 
10. 동성애자들이 사람들의 언사나 행동에 있어서 폭력적인 적의의 대상이 되어왔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것은 개탄할 일이다. 어떠한 곳에서 일어나든, 그러한 처우는 교회의 목자들로부터 단죄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한 대접은 건전한 사회의 근본 원리를 위협하는 일종의 타인경시를 드러내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지닌 천부의 존엄성은 언행과 법률안에서 언제나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에게 저질러지는 범죄에 대한 당연한 반발이 곧 동성애 상황의 정당성에 대한 주장이 될 수는 없다. 그러한 주장이 펼쳐지고 결과적으로 동성애 행위가 용인된다며, 또는 어느 누구도 정당한 권리를 내세울 수 없는 그러한 행위를 보호하는 시민법이 도입된다면, 다른 왜곡된 개념이나 실천이 그 기반을 잡아가고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반작용이 증대된다 하더라도 교회나 사회는 속수무책일 따름이다.
 
11. 동성애 성향이 어떤 경우에는 고의적인 선택의 결과는 아니며, 동성애자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어 동성애 형태로 행동한다는 사실이 논란되어 오기도 하였다. 그러한 사람에게 자유가 결여되어 있다면, 동성애 행위를 하였다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여기에서, 개별적인 사건들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일반화를 경고해 온 교회의 현명한 윤리적 전통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주어진 사건에서 개인의 유죄성을 감소시키거나 제거시키는 상황이 존재할 수 있고 과거에도 존재하였을 수 있으며, 또는 다른 상황이 개인의 유죄성을 증대시킬 수도 있다. 동성애자의 성적 행위는 언제나 그리고 전적으로 강제적이며 따라서 무죄라고 하는 어떠한 근거도 없는 치졸한 가정은 반드시 피하여야 한다. 본질적인 것은 동성애자들 또한 인간을 특징짓고 인간에게 존엄성을 부여하는 근본 자유를 지니고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죄악으로부터의 모든 회개가 그러하듯이, 동성애 행위의 포기는 하느님의 해방시키는 은총에 대한 개인의 전적인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12. 그렇다면,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동성애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근본적으로, 그들은 자기 생활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구현하도록 부름받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처지에서 겪는 모든 고통과 곤경을 통하여 주님의 십자가 희생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 죽음으로부터 생명과 구원이 나오는 것이므로,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저 십자가는 유익한 희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 십자가를 지라는 부르심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분명히 조소를 보내겠지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사실, 그것은 바로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이다. 사도는 갈라디아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신자들의 생활 안에서,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들은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입니다."(갈라 5,22-24).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자기 부정의 무의미한 노력인 것처럼 오해되기 쉽다. 십자가는 자기 부정이다. 그러나 십자가는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일으키시고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악행의 자리에서 덕행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시는, 바로 하느님의 뜻을 받는 자기 부정이다.
 
빠스카의 신비를 경축하기 위하여, 그 신비가 일상 생활에 속속들이 새겨져야 할 필요가 있다.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기 자신의 의지를 희생시키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실제로 구원을 가로막는 것이다. 십자가가 예수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핵심적인 표현이듯이, 주님의 희생과 동성애 남녀들의 자기 부정의 일치는 그들을 파괴시키려고 끊임없이 위협하는 생활방식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해 줄 자기 증여의 원천이 될 것이다.
 
13.우리는 물론 모든 신자들과 일반 사회에 대한 교회 가르침의 명료하고도 효과적인 전달은 사목자들의 올바른 지도와 그 충실성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인정한다. 특별히 주교들은 그 직무의 협력자들이 그 누구보다도 사제들이 교회의 가르침을 올바로 알고 모든 사람들에게 이를 온전하게 전달할 열의가 있는가를 감독하여야 할 중대한 책임을 지니고 있다.
 
동성애자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에 있어서 많은 성직자 수도자들이 보여준 특별한 관심과 선의는 치하할 만한 일이며, 우리는 그러한 관심이 위축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한 헌신적인 봉사자들은 동성애자들을 정결한 생활로 나아가도록 격려하고 그들이 지닌 천부의 존엄성과 가치를 천명함으로써 주님의 뜻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14. 본 성은 이를 염두에 두고, 그렇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더라도, 교회의 가르침을 변화시키려고 교회에 압력을 가하고자 하는 여하한 기도에도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주기를 요청하고자 하는 바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활동이나 공적인 진술들을 면밀하게 검토해 보면, 사목자들과 신자들을 오도하려고 하는 교묘하고도 모호한 표현들이 드러난다. 예컨대, 그들은 교도권의 가르침을 제시하며, 그것이 마치 인간의 양심 형성을 위한 선택적인 원천인 것처럼 내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권위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들 일부 단체들은 그 조직이나 구성원들을 일컫는 데에 "가톨릭"이라는 말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교도권의 가르침을 옹호하거나 증진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이를 공공연히 공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생활을 예수의 가르침에 일치시키겠다는 소망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사실 그들은 예수의 교회가 가르치는 것을 외면하고 있다. 이렇게 모순되는 행동은 결코 주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15. 그리고 우리는 주교들이 교회의 가르침에 완전히 일치하는 가운데 그 교구의 동성애자들을 위하여 사목적 배려를 하도록 권장하는 바이다. 결코 진정한 사목 계획은 동성애 행위가 부도덕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은 채 동성애자들이 서로 함께 모이는 그러한 단체들을 포함시킬 수는 없다. 동성애자들이 죄에 다가서는 기회를 피하도록 돌보아주는 일이 참으로 사목적인 접근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위험들을 피하는 여러 계획들을 진심으로 격려하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목적 배려를 위한 노력에 있어서 교회의 가르침으로부터 이탈하거나 그 가르침에 관하여 침묵을 지키는 것은 결코 사목이나 배려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오직 진실한 것만이 궁극적으로 사목이 될 수 있다. 교회의 입장에 대한 경시는 동성애 남녀들로 하여금 그들이 필요로 하고 또 마땅히 받아야 할 배려를 가로막고 있다.
 
진정한 사목 계획은 모든 차원의 영성 생활에 있어서, 성사들을 통하여 특히 화해의 성사에 자주 진지하게 참여함으로써, 그리고 기도, 증거, 상담, 개별적인 배려를 통하여 동성애자들을 도와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교 공동체 전체가 그 형제 자매들을 속이거나 소외시키지 않고 그들을 도와 주어야 하는 지신의 사명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16. 이러한 다방면의 접근으로부터 수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적어도,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이 동성애자도 여러 수많은 차원에서 동시에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그 성적 경향에 대한 환원적인 언급으로 적절하게 진술될 수는 없다.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개인적인 문제와 어려움들을 안고 있지만, 도한 성숙에의 도전과 역량, 재능과 은총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교회는 인간은 하나의 "異性愛者" 또는 "同性愛者"로서 구분하기를 거부하며 인간을 돌보아야 하는 절실한 상황을 조성해가고 있으며, 모든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되어 그 은총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의 상속자가 된 근본 신원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17. 본 성은 이 모든 문제에 대하여 주교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이 중요한 문제에 관한 주님과 교회의 가르침을 모든 신자들에게 온전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주교들의 노력을 지지한다.
 
위에 언급한 문제들에 비추어, 주교들은 자신의 교구에서 주교가 어느 정도로 관여할 것인가를 결정하여야 한다. 여기에 더하여, 주교들이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나아가 전국 주교회의 차원에서 협력 계획도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특별히, 우리는 주교들이 그 재량에 따라 동성애자들을 위한 적절한 형태의 사목 발전을 지지하도록 요청하고자 한다. 이러한 사목적 배려는 교회의 가르침에 완전히 일치하는 가운데 심리학, 사회학, 의학의 도움을 포함하게 될 것이다.
 
주교들은 또한 교회가 가르치는 바를 가르치고 인간의 성과 그리스도인의 혼인이 지니는 의미와 거기서 쌓아가는 덕행들을 깊이 반성함으로써 이 특수 분야의 사목에 중대한 공헌을 할 수 있는 모든 가톨릭 신학자들의 협력을 촉구하여야 할 것이다.
 
주교들은 사목 봉사자들을 선정하는 데에 특별한 배려를 하여, 그들이 지닌 고도의 영성적 인격적 성숙성과 교도권에 대한 충실성으로 온전하 의미에서 건강과 행복을 증진시킴으로써 사목자들이 동성애자들에게 진정한 봉사를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주교들이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가정에 대한 관계 안에서 인간의 성에 관한 진리에 바탕을 두는 적절한 교리교육 계획을 추진하도록 권장하는 바이다. 그러한 계획들은 동성애 문제를 다루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 이러한 교리교육은 또한 동성애자가 있는 가정으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있는 이 문제를 처리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교회의 가르침을 훼손시키거나 이를 모호하게 하고 또는 교회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무시하려드는 단체들은 어떠한 것이든 결코 후원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러한 단체들에 대한 후원하는 듯한 인상은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단체들이 계획적인 종교적 예식을 거행하고 가톨릭의 학교나 대학들을 포함한 교회 건물들을 사용하는 데에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교회 재산의 이용에 대한 허가가 단순히 정당하다거나 사랑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여질지 모르나, 현실적으로 그것은 그러한 기관의 설립 목적에 위배되는 것이며, 이는 흔히 오해와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관계 규정의 제정에 있어서, 주교들은 가정 생활을 수호하고 증진시켜야 할 책임이 자신들의 최대 관심사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18. 주 예수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셨다.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8,32). 성서는 우리에게 사랑 가운데서 진리를 말하라고 명한다(에페 4,15참조). 진리요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동정심이 넘치는 우리 주님의 사목적 염려로써 모든 남녀와 어린이들에게 봉사하도록 교회를 부르시고 계신다. 바로 이러한 정신에서, 오류에 의해서는 다만 무거워질 뿐이고 오직 진리에 의하여 가벼워지는, 그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며, 우리는 이 서한을 교회의 여러 주교들에게 보내는 바이다. 아래 서명한 장관에게 허락된 알현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는 신앙 교리성의 정기 회의에서 채택된 이 서한을 인준하시고, 이를 발표하라고 명하시었다.

 

1986년 10월 1일, 로마에서,

장관 요제프 라찡거 추기경

차관 알베르또 보보네 대주교

 

* 原文 : S.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Letter to the Bishops of the Catholic Charch on the Pastoral Care of Homosexual Persons, Vatican City 1986. (姜大仁 譯)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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