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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윤리의 특정 문제에 관한 훈령 <인간의 존엄>

관리자 | 2009.02.04 10:29 | 조회 6834

 

교황청 신앙교리성

 

생명 윤리의 특정 문제에 관한 훈령

「인간의 존엄」(Dignitas Personae)

 

 

머리말

 

1. 인간의 존엄, 임신[受精]에서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지닌 인간의 존엄은 인정받아야 한다. 이 기본 원칙은 인간 생명에 대한 위대한 ‘긍정’ 표명하는 것으로, 오늘날 세상에서 더욱 중요해진 생명 의학 연구에 관한 윤리적 성찰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교도권은 이 분야의 도덕 문제들을 명확히 밝히고 해결하고자 자주 발언해 왔는데, 특히 훈령 「생명의 선물」(Donum Vitae)이 중요하다. 「생명의 선물」이 발표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 이 훈령을 시대에 맞게 갱신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생명의 선물」의 가르침은 이 문서의 바탕이 된 원칙들뿐만 아니라 이 문서에 표현된 도덕적 평가와 관련하여 온전히 유효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인간 생명과 가정이라는 중요한 영역에 도입되고 있는 새로운 생명 의학 기술들, 특히 인간 배아에 대한 연구와 치료 목적의 줄기 세포 사용을 비롯한 다른 실험 의학 분야들도 더 많은 질문들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질문들은 답변을 요구한다. 이 분야의 과학적 발전의 속도와 이에 대한 홍보는 광범한 여론의 기대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를 법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입법 기관들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결정을 내릴 것을 요청받고 있고, 때로는 광범한 국민 투표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발전에 따라 신앙교리성은 새로운 교리 훈령을 마련하여, 훈령 「생명의 선물」에 나타난 기준에 비추어 최근의 문제들을 다루고, 또한 이미 다루었으나 더 명확한 설명이 필요한 문제들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2. 이 연구를 위해서, 신앙교리성은 그리스도교 인간학의 원리들에 비추어 이 문제들을 다루고자 교황청 생명학술원의 분석에서 도움을 얻었고 이 문제들의 과학적 측면과 관련하여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들인 「진리의 광채」(Veritatis Splendor)와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을 비롯하여 여러 교도권 문서들은 논의 중인 문제들을 검토하는 방식이나 내용과 관련하여 명확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철학이나 과학의 다면적인 상황에서, 상당수의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정신에 비추어 의학이 질병을 치유하고, 고통을 경감시키며, 필요한 배려를 모든 이에게 공정하게 확대시키려는 목적에서 병약한 인간에게 봉사한다고 본다. 그러나 동시에 철학계와 과학계 안에는 생명 의학 기술의 진보를 본질적으로 우생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3. 인간 생명에 대한 생명 의학 연구에 관하여 원칙들과 도덕적 평가를 제시하며, 가톨릭 교회는 신앙과 이성의 빛에 의지하고, 인간과 인간의 소명에 대한 총체적인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각은 생명에 대한 커다란 경외심을 드물지 않게 보여 주는 다양한 문화 전통과 종교 전통 안에 있는 좋은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활동 안에 있는 좋은 것을 모두 통합시킬 수 있다.

교도권은 또한 과학을 생명의 온전한 선과 모든 인간의 존엄을 위한 소중한 봉사로 여기는 문화의 전망에 지지와 격려의 말을 전하고자 한다. 교회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명 의학의 진보를 위해 헌신하고 이 분야에서 그들의 신앙을 증언하게 되리라는 희망과 바람으로 과학적 연구를 바라본다. 또한 교회는 그러한 연구 결과들이 세상의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지역에서 활용되어 가장 곤궁한 이들이 인도주의적 지원을 받게 되기를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고통받는 모든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들에게 위로만이 아니라 빛과 희망을 전해 주고자 한다. 이러한 것들은 실제로, 인간 삶의 일부이고 모든 개인사에 존재하는 질병의 순간과 죽음의 체험에 의미를 가져다주어, 삶을 부활의 신비로 열어 준다. 참으로, 교회는 신뢰에 찬 눈으로 바라본다. “생명이 승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에게 확실한 희망이다. 그렇다. 생명은 승리할 것이다. 진리와 선, 기쁨, 참다운 진보가 생명의 편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사랑하시고 기꺼이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께서 생명의 편이시다.”

이 훈령은 가톨릭 신자들과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이를 대상으로 한다. 이 훈령은 세 부로 이루어지는데, 제1부에서는 인간학, 신학, 윤리학의 기본 주요 요소들을 살펴보고, 제2부에서는 출산에 관한 새로운 문제들을 다루며, 제3부에서는 배아와 인간 유전자 조작과 관련된 새로운 방법들을 검토할 것이다.

 

 

 

제1부

 

인간 생명과 출산의 인간적 신학적 윤리적 측면

 

4.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인간 생명의 초기 단계를 이해하는 데에서 괄목할 만한 의학적 진보가 이루어졌다. 인간의 생물학적 구조와 인간 출산의 과정이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질병을 극복하거나 고치는 데에 기여하고 인간 출산의 정상 기능을 회복하게 할 때, 이러한 발전은 물론 긍정적이고 지지할 만하다. 반대로 인간 존재의 파괴와 연관되거나, 인간 존엄에 위배되는 수단을 사용할 때, 또는 인간의 온전한 선에 반대되는 목적을 위해 사용될 때라면, 이러한 발전은 부정적이고 쓸모없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그 존재의 바로 첫 단계부터 결코 단순한 세포군으로 환원될 수 없다. 배아기의 인간의 몸은 모든 유아의 탄생으로 명백히 드러나는 고유한 목적을 지닌 정교한 프로그램에 따라 점진적으로 발달한다.

인간 배아를 다루는 방법들과 관련된 모든 도덕 문제들을 평가하려면 훈령 「생명의 선물」에 나오는 도덕 기준을 상기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인간 생식의 결실인 생명은 그 존재의 시작, 곧 남녀 생식 세포 접합체의 형성 시기부터 육체와 정신의 합일체인 인간 존재로서 무조건 존경받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경받고 대접받아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인격자로서 그의 권리 또한 인정받아야 하며, 이런 권리 가운데 가장 우선되는 것이 바로 무죄한 생명이 침해받지 않아야 하는 권리인 것이다.”

 

5. 이성이 참된 것으로 또 자연 도덕률과 일치한다고 인정할 수 있는 이 도덕 원칙은 이 분야에 대한 모든 입법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사실, 인간 발달의 지속성에 관하여 「생명의 선물」이 확실한 과학적 증거로 입증했듯이, 이 도덕 원칙은 존재론적 특성의 진리를 전제로 하고 있다.

「생명의 선물」이 명백하게 철학적인 성격의 언급을 피하기 위해 배아를 하나의 인격체로 정의내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모든 인간 생명의 존재론적 차원과 그 특별한 가치 사이에 근본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지적하였다. 영혼의 존재를 실험으로 확인할 수는 없어도, 인간 배아에 관한 과학적 결론들은 “인간 생명의 최초 순간에 이미 하나의 인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성적 판단으로 지적하고 있다. 인격적 인간이 아닌 인간 개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실제로, 태어나기 전후를 포함하여 전 생애에 걸친 인간 실재는 완전한 인간학적 윤리적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본질의 변화나 윤리적 가치의 단계적 차이를 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 배아는 처음부터 인간 고유의 존엄을 지닌다.

 

6. 그러한 존엄에 대한 존중은 모든 사람의 의무이다. 모든 사람은 각기 고유한 존엄과 가치를 지워낼 수 없는 방식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생명의 탄생이 이루어지는 참된 자리는 혼인과 가정이다. 거기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상호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를 통해 인간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다. 태어날 아이에 대한 참으로 책임 있는 출산은 “반드시 혼인의 열매이어야 한다.”

모든 시대와 모든 문화에 존재하는 혼인은 “하느님께서 당신 사랑의 계획을 인간들 사이에서 실현시키고자 지혜롭게 제정하신 것이다. 부부는 그들 자신을 근본적으로 또 독점적으로 서로 주고받음으로써 서로 자기를 완성하려는 인격의 교류를 이루며, 새로운 생명의 창조와 교육을 위하여 하느님과 협조하는 것이다.” 풍요로운 사랑의 결실을 지니는 혼인 생활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는, “그들의 부부 생활의 근원에는 참다운 ‘예’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이 ‘예’는 상호성 안에서 표현되고 진실하게 실천되며 언제나 생명으로 열려 있는 것이다. …… 개인과 민족들 사이의 참된 평등을 인식하는 데에 근본이 되는 자연법은 부부 관계에 새로운 자녀 출산에 대한 그들의 책임감을 불어넣는 원천으로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 생명의 전달은 자연에 새겨져 있고 그 법칙은 모두 준거로 삼아야 할 불문율로 존속한다.”

 

7.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은 믿음을 통해 받아들이고 존중될 뿐만 아니라 정화되고 고양되며 완전해진다고 교회는 믿는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과 비슷하게 당신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며(창세 1,26 참조), 당신의 창조물을 보시고 “참 좋았다”(창세 1,31)고 하셨다. 훗날 아드님께서 이를 받아들이시어 사람이 되신다(요한 1,14 참조). 강생의 신비를 통하여,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인간을 구성하는 육신과 영혼의 존엄을 확인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육신을 하찮게 여기시지 않고 오히려 그 의미와 가치를 완전히 밝혀 주셨다. “실제로, 사람이 되신 말씀의 신비 안에서만 참으로 인간의 신비가 밝혀진다.”

아드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요한 1,12)가 되고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다”(2베드 1,4). 이 새로운 차원은 모든 이가 이성으로 깨달을 수 있는 피조물의 존엄에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의 존엄을 하느님께 맞갖은 생명이라는 폭넓은 전망으로 드높여 우리가 인간 생명과 그 생명을 낳는 행위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할 수 있게 해 준다.

이성이 요구하는 개별 인간의 존중은 이러한 신앙의 진리들에 비추어 더 드높아지고 굳건해진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 생명의 존엄에 대한 긍정과 인간 생명의 신성함에 대한 긍정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느님께서 역사 안에서 일하시면서 세상과 인간을 돌보시는 다양한 방식들은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를 보완하고 서로 통교한다. 이 모든 것은 그 기원과 목표를 영원하고 슬기롭고 자애로운 계획 안에 두고 있으며, 이로써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로마 8,29) 미리 정하셨다.”

 

8. 인간적인 그리고 신적인 이 두 차원의 상호 관계를 그 출발점으로 삼을 때, 인간이 그 무엇도 침해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이유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영원한 소명을 지니고 있고 살아계신 하느님의 삼위일체적인 사랑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았기 때문이다.

이 가치는 모든 이가 차별 없이 지닌 것이다. 존재한다는 그 단순한 사실 때문에 모든 인간은 온전히 존중받아야 한다. 인간 존엄에 관하여 생물학적 발달이나 심리학적 발달, 교육 정도, 건강과 관련된 기준에 따른 차별은 없애야 한다. 하느님과 비슷하게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그 모든 삶의 단계에서 “하느님의 외아드님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 인간을 향한 이토록 끝없고 거의 불가해한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이 지식, 아름다움, 건강, 젊음, 고결함 등, 모든 다른 자질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사랑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 생명은 언제나 선이다. 이는 ‘이 세상에 하느님을 증언하는 존재이고, 그분께서 존재하신다는 표징이며, 그분 영광의 자취’(「생명의 복음」, 34항)이기 때문이다.”

 

9. 자연적이면서 초자연적인 생명의 두 차원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며 새로운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행위가 삼위일체적인 사랑의 반영이라는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사랑과 생명 자체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인격적 친교의 신비와, 창조주이시며 아버지이신 당신의 활동에 특별한 방법으로 참여하라는 소명을 남자와 여자에게 새겨 주셨다.”

그리스도교 혼인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존재하는 자연적 상보성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자신의 전체적 생활 계획, 가진 것과 됨됨이를 나누려는 부부의 인격적 노력을 통해서 성장한다. 이 때문에 이 일치는 인간의 깊은 요구의 결실이고 징표다. 그러나 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이 인간적 요구에 유의하여 그것을 확인하고 정화하시며 들어올리시어, 혼인성사를 통해서 완성으로 이끄신다. 그 성사 거행에서 오시는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인 부부에게 새로운 사랑의 친교의 은혜를 주신다. 이 친교는 교회를 주 예수님의 신비체로 만드는 저 특수한 일치에 대한 살아있는 진실된 모상이다.”

 

10. 교회가 인간과 인간의 시작에 관한 최근 의학 연구의 발전에 대하여 윤리적 판단을 표명하는 것은, 의학 자체의 고유 분야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그들의 행동에 대한 윤리적 사회적 책임을 호소하는 것이다. 교회는 생명 의학의 윤리적 가치가 삶의 어떠한 순간에 있어서나 모든 인간에게 합당한 무조건적인 존중뿐만 아니라 생명을 전달하는 인간 행위의 특수성 수호와 관련하여 평가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교도권의 발언은 양심 교육에 이바지하여야 할 사명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 사명은 그리스도이신 진리를 분명히 가르치고 동시에 인간의 본성 자체에서 나오는 도덕 질서의 원리들을 권위 있게 선언하고 확증하는 것이다.

 

제2부

 

출산에 관한 새로운 문제들

 

11. 앞에서 말한 원리들에 비추어, 이제 「생명의 선물」의 발표 이후 더 분명히 드러난 출산에 관한 특정 문제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출산을 돕는 기술들

12. 불임 치료와 관련하여, 새로운 의학 기술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본 선을 존중하여야 한다. 가) 임신[受精]에서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의 생명권과 신체 보전권, 나) 혼인 안에서 배우자와 함께 아버지나 어머니가 되는 권리에 대한 상호 존중을 의미하는 혼인의 일치, 다) “인간의 출산이 두 사람 사이의 진정한 사랑이 담긴 부부 행위의 열매이기를” 요구하는 성의 인간적 가치. 출산을 돕는 기술들은 “그들이 단지 인공적이란 점 때문에 거부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 자체로는 학문으로서 의학적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이런 개입들에 대해서는 하느님께 받은 생명과 사랑의 선물에 대한 올바른 사명감을 깨닫도록 부름받은 인간의 그 존엄성과 관련해서 도덕적 평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원리에 비추어, 부부 행위를 대치하는 모든 부부 외 인공 수정 기술들과 부부 간 인공 수정 기술들은 배제되어야 한다. 한편, 부부 행위와 임신을 돕는 기술들은 허용된다. 훈령 「생명의 선물」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의사는 모든 인간과 그 인간 출산에 봉사하여야 한다. 그는 인간 생명을 함부로 처리하거나 그들의 운명까지 결정할 하등의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의학적 개입은 그것이 부부 행위를 촉진하거나 정상적으로 행해지는 부부 행위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해 줄 때 비로소 인간의 품위를 존중하는 것이 된다.” 또한 부부 간 인공적 정자 주입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혼인 안에서 부부 간 인공적 정자 주입 행위는, 그것이 부부 행위를 대신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촉진하고 도와 줌으로써 그 행위가 본래 목적을 달성하도록 해 주는 일이 아닌 이상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

 

13. 물론, 자연 출산의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목적의 기술들, 예를 들어 호르몬을 이용한 불임 치료, 자궁내막증 수술, 막힌 난관을 뚫어주거나 난관 기능을 복원하는 수술은 정당하다. 이 모든 기술은 참된 치료로 간주될 수 있다. 불임의 원인이 되는 문제가 해결되면 혼인한 부부는 바로 그 행위 자체에 대한 의사의 직접적인 간여 없이 출산으로 이어지는 부부 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치료들 가운데 그 어느 것도 그 자체로 참으로 책임 있는 출산에 알맞은 부부 행위를 대치하지 못한다.

아이를 갖고자 하는 많은 불임 부부들을 돕기 위하여, 적절한 법률을 통하여 입양을 권장하고 장려하며 촉진해야 한다. 이로써 부모 없는 많은 아이들이 인간적으로 성숙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가정을 얻게 된다. 또한 불임 예방을 위한 연구와 투자도 장려할 만하다.

 

체외 수정과 고의적 배아 파괴

14. 체외 수정의 과정이 흔히 배아의 고의적 파괴와 관련된다는 사실은 훈령 「생명의 선물」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아직 다소 불완전한 기술들 때문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체외 수정의 모든 기술은 인간 배아를 마치 그저 쓸모 있는 것만 고르고 나머지는 처분해 버리는 세포 덩어리인 것처럼 다루고 있다.

인공 출산에 의지하는 여자들 가운데 대략 1/3이 아이를 갖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생산된 배아의 총수와 결국 태어난 아기 수의 비율을 고려해 보면, 희생되는 배아의 수가 매우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체외 수정을 실시하는 이들은 이러한 손실을 긍정적인 결과를 위해 치른 대가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로, 매우 염려되는 부분은, 이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연구의 목적이 무엇보다도 그 과정을 시작한 여자들에게서 태어나는 아이의 수적 비율의 측면에서 더 나은 결과를 얻으려는 것이고, 각 개별 배아의 생명권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15. 배아의 손실이 대부분의 경우에 고의가 아니라거나 부모와 의사의 뜻과 전혀 다르게 이루어진 것이라는 반론이 흔히 제기된다. 그들은 이것이 자연 출산의 경우와 전혀 다르지 않은 위험에 관한 문제라고 한다. 아무런 위험도 감수하지 않고 새 생명을 낳고자 하는 것은 실제로 생명 전달을 위해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체외 수정 과정에서 배아의 손실이 그 절차에 관여한 이들의 의도와 전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배아의 유기와 파괴와 손실이 예견되고 의지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도 사실이다.

체외에서 생산된 배아에 결함이 있을 때에 이는 곧바로 버려진다. 출산에 문제가 없는 부부가 자녀의 유전학적 선별을 위해 인공적인 출산 수단을 활용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이제 출산을 위해 더 많은 수의 난모 세포를 얻으려고 배란을 촉진하는 일이 통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하여 얻은 배아들 가운데 일부만 여성의 자궁에 이식되고 나머지는 다음에 사용하기 위해 냉동 보관된다. 다수의 배아를 이식하는 이유는 최소한 배아 하나라도 자궁에 착상될 가능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따라서 한 아이를 바라는 경우에, 일부 배아는 손실되고 다태아 임신은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예상에서, 이러한 기술로 이식하는 배아의 수는 그보다 훨씬 많다. 이러한 방식으로, 다수의 배아를 이식하는 관행은 배아에 대한 순전히 실용적인 처우를 함축한다. 놀랄만한 사실은, 통상적인 직업 윤리와 의료 당국 스스로가 다른 의료 분야에서는 결코 그토록 높은 비율의 실패와 죽음과 연관된 의료 절차를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사실, 체외 수정 기술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이를 갖고자 하는 바람 앞에서 개별 배아는 충분히 존중받지 않아도 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흔히 묵과되는 이 안타까운 현실은 참으로 통탄할 만하다. “생명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처럼 보이고, 또 종종 그러한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다양한 인공 생식 기술들이 실제로는 생명에 대한 새로운 위협으로 가는 문을 연다.”

 

16. 또한 교회는 온전히 인격적인 부부 행위의 맥락으로부터 출산을 분리시키는 일은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고 여긴다. 인간 출산은 남편과 아내의 인격적 행위이고 그 어느 것도 이를 대치할 수 없다. 체외 수정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엄청난 수의 낙태를 경솔하게 인정하는 일은, 단순한 번식으로 전락될 수 없는 출산에 합당한 존중과 위배될 뿐만 아니라, 기술적 절차가 부부 행위를 대신함으로써 모든 인간에게 합당한 존중이 얼마나 취약해지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한편, 그러한 존중에 대한 인식은 혼인의 사랑에서 양분을 얻는 부부의 관계를 통해 촉진된다.

교회는 아이를 갖고자 하는 바람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출산 문제와 싸우는 부부의 고통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러한 바람이 마치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듯이 모든 인간 생명의 존엄을 짓밟아서는 안 된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생각이 임신된 아이의 유기나 파괴를 정당화할 수 없듯이, 아이를 갖고자 하는 바람이 자녀 ‘생산’을 정당화할 수 없다.

실제로, 윤리적 준거점이 정립되어 있지 않고 기술 발전에 내재한 가능성을 아는 일부 연구들은 순전히 주관적인 욕구의 논리와 이 분야에 매우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압력에 굴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배아 상태의 인간에 대한 이러한 조작에 맞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거듭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하느님의 사랑은 아직 엄마의 품속에 있는 새로 잉태된 아기와 어린이나 젊은이, 어른, 노인을 구별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들 안에 저마다 새겨져 있는 당신과 비슷한 모습(창세 1,26)을 보시기 때문에 그들을 구별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 따라서 교도권은 임신[受精]에서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 생명의 신성 불가침을 계속 선포한다.”

 

세포질 내 정자 주입(Intracytoplasmic sperm injection: ICSI)

17. 최근의 인공 수정 기술들 가운데 점진적으로 특별한 중요성을 띠게 된 기술이 세포질 내 정자 주입이다. 이 기술은 다양한 형태의 남성 불임을 극복하는 데에 효과적이어서 점점 더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체외 수정의 일종인 세포질 내 정자 주입은 전반적인 체외 수정과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부당하다. 이는 출산과 부부 행위를 완전히 갈라놓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포질 내 정자 주입은 “이 기술을 사용하는 제삼자의 기술적 확신과 실제적인 기술 능력만을 믿고 부부의 몸 밖에서 시행되는 일이다. 이런 기술은 의사나 생물학자가 배아의 생명과 주체성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술이 인격적 인간의 기원과 운명을 지배하게 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생명에 대한 이런 기술의 지배야말로 부모나 자녀에게 공통적이어야 할 존엄성과 평등의 원칙을 위배하는 일인 것이다. 체외 수정은 인위적으로도 수정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소산이다. 그러한 수정은 사실 부부 일치를 통한 특별한 행위의 표현이나 결실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적극적으로 바란 것도 아니다.”

 

냉동 배아

18. 체외 수정 기술의 성공률을 높이는 방식들 가운데 하나가 시도 횟수를 늘리는 것이다. 여성의 몸에서 난모 세포를 여러 차례에 걸쳐 채취하는 것을 피하려고 한 번에 많은 난모 세포를 채취하는데, 이는 시험관에서 수정시킨 많은 배아의 냉동 보존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방식으로, 첫 시도로 임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절차를 되풀이하거나 나중에 임신을 추가로HumanDignity_final.hwp(110.08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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